세컨드 윈드
한 달여 전 출가를 했다. 작년 12월, 명상센터에서 만난 한 분의 소개로 이곳 절에 방문해 일주일간 스님들과 함께 지냈었다. 돌아가는 날 스님께서 내게 깊이 허리 숙여 인사했다. 스스로를 귀하고 귀하게 여기라는 그의 말이 오래 맴돌았다. 그날 저녁 스님이 안부 메시지를 보냈고, 그것을 읽고 삼 일간 울었다. 한 개인을 통한 메시지였지만 너머의 거대한 사랑을 느꼈다. 특별한 단어도 대단한 수식도 없었지만 온전한 사랑이었다. 이토록 진실하고 두려움 없는 사랑이 있구나, 그것이 몇 마디 말로 전달될 수 있구나. 그것이 놀라웠다.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사랑을 말하는 스님도, 너머에 거대하게 존재하는 사랑도, 그 사랑을 느낄 수 있던 나의 영혼도 모두 놀라웠다.
존재는 누구나 자신의 본질을 누군가 보아주기를 깊이 바란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 정체성을 충분히 인정받고 이해받기를 바란다. 그리고 대부분은 타인에게 그 주도권을 준다. 한때 나에게는 그것이 부모님이었고, 선생님이었고, 친구였고, 애인이었고, 동료 활동가였고, SNS상의 반응이었다. 그렇지만 나 스스로에게는 권위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나 자신은 그토록 귀한 존재라는 것, 나의 본질은 빛이며 사랑 그 자체라는 것. 그러니 누구의 이해도 인정도 구할 것 없이 다만 나 스스로를 사랑하면 된다는 것. 스스로를 깊이 사랑하는 일이 사랑의 시작이라는 것, 그것을 배운 뒤, 나는 나 자신에게 권위를 주기로 했다. 이곳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그걸 연습하고 있다.
절을 한다. 나 자신의 신성, 나 자신이라는 부처님에게 하는 절이다. 백 일간 하루 이천 배, 삼천 배 숙제를 받았다. 못 지킬 때가 더 많다. 간신히 천 배를 채울 때도 있고 거뜬히 이천 배를 채울 때도 있다. 우리의 신체 중 가장 높은 곳인 머리를 가장 낮은 곳에 내려놓으면서 마음 자세가 낮아지기를 연습한다. 그럼에도 불쑥 이기심과 우울감, 피로감과 혐오가 고개를 들면 그저 그대로 보아주려 한다. 그럼에도 절을 할 때 머릿속은 온갖 생각들로, 은사스님의 말을 빌리자면, '버글버글하다.'
얼마 전 절을 하며 문득 생각했다. 한평생에 걸쳐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경한다는 것의 의미는, 단 한 존재를 그토록 지극정성으로 여기는 자는 다른 모든 이에게도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걸 연습하는 게 아닐까. 단 한 명을 모시는 법을... 그리고 활동했던 단체가 단 한 존재를 위해 꾸려졌다는 게 생각났다. 그 활동은 전혀 종교적이지 않았지만 그건 이미 부처님을 모시는 태도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내가 함께했던 동물권 활동, 기후정의 활동 모두 그러했다. 수라갯벌에 남은 마지막 저어새를 위해서, 성미산 자락에 사는 숲새를 위해서, 도살장 앞 한 명의 돼지, 수조 안 단 한 명의 물살이를 위해서... 그 한 명을 위해 그 모든 시간과 마음과 몸을 내던 그 모든 활동가들은 그 존재의 존귀함을 만났기에 그를 모시고 있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성불한다는 건 다름 아닌 내 안의 빛을 만나는 일이고 그것을 조금이나마 눈치챈 이들은 다른 이의 빛에도 자기의 것과 다름없이 반응한다. 다른 이의 존귀함이 바로 자기 자신의 것과 다름없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아무리 탄원서에 서명을 하고 공유를 하고 글을 쓰고 현장을 찾아도, 존재들은 계속 죽어나갔다. 함께하는 순간보다 함께하지 못하는 순간이 더 많았다. 언젠가 한 동료 활동가가 말했다. 우리가 끝내 할 수 있는 건 애도 뿐이라고. 그의 말이 옳았다. 언제든 어디서든 함께 할 수 있는 건 기도와 애도뿐이었다. 그런 죽음과도 같은 일들이 일어날 때, 언제든 어디서든 함께하고 싶었다.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사랑을 선택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의 힘을 만나는 일이 필요했다. 그래서 출가를 했다. 마음의 힘으로 늘 곁에 있을 수 있는 일을 택하기로 했다. 나 자신을 만나는 일은 곧 우리를, 우주를 만나는 일이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오늘도 당신들의 숨으로 나는 살아가고 있다. 나의 한숨이 누군가를 위한 기도가 되기를 바라며 절을 한다. 한 존재의 궤적을 완전히 이해하는 일, 누군가의 한순간을 그 존재 전부로 한계 짓지 않고, 그의 어두운 순간에도 온전히 애도하고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 일, 그것을 시작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