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장 사랑하는 드라마의 한 대사입니다. 봄이 되면 습관처럼 꺼내는 작품이에요.
이 작품을 겨우내 아끼고 있다가 봄만 되면 열심히 꺼내먹습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에, 이 계절과 딱 맞는 작품을 틀어놓고, 좋아하는 간식을 옆에 두고, 포근한 이불을 덮고 가만히 음미하고 있으면 행복이 별 게 있나- 싶을 만큼 행복해져요.
꽃, 물, 해, 풀, 달, 그리고 미소마저 한껏 싱그러워지는 이 계절이 참 좋습니다. 봄이 되었다고 저마다의 힘을 내며 피어오르는 작은 존재들을 보고 있으면 ‘저 친구들도 애쓰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괜히 뭉클해지기도 하고요. 그렇게 봄 구석구석에 눈을 두고 있으면, 몇 해 전 어느 봄날 허무하게 스러져버린 또 다른 작은 존재들 생각에 눈물이 차오르기도 합니다.
2014년부터 저의 봄은, 가장 사랑하는 계절이자 가장 아픈 계절이 되었어요.
손꼽아 기다리던 봄이 오는 게 두려울 만큼 사무치게 아팠습니다. 어떤 날엔 원망이, 어떤 날엔 죄책감이, 또 어떤 날엔 무력감이 무겁게 짓눌렀어요. 세상이 이제 그만 잊으라고 하는 게 역겨워 토기가 올라오는 날도 있었어요. 제가 잊으면 세상 사람들도 전부 잊을 것만 같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더 울고 더 화내며 몸 깊숙이 기억을 새기던 때가 있었습니다.
계절과 함께 밀려오는 기억과 감정을 맨몸으로 감당할 자신이 없어질 즈음, 마음을 둘 다른 곳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우연히, 혹은 필연히 만난 게 이 작품입니다. 처음엔 그저 이 벅찬 감정을 똑 떼어 잠시 놔둘 곳이 필요했던 건데, 점차 작품 속 인물들과 같이 웃고, 울고, 설레었어요. 구체적으로 슬퍼하고, 구체적으로 사랑하는 이들의 대사에 마음을 맡겨버렸습니다. 아픈 저를 마주하기도 하고, 인물의 입을 빌려 위로를 얻기도 했고요. 현실의 저에게 몰아친 감정도 조금씩 흘려보낼 수 있었습니다.
똑같은 작품을 똑같은 계절에 보기를 수 해 째, 질릴 때도 된 것 같지만 전혀 질리지 않습니다. 습관은 질리는 게 아니니까요.
봄마다 이 작품을 꺼내어보며 더 의연한 봄을 보내고 있습니다. 무뎌졌다는 말은 아닙니다. 여전히 아픈 봄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이 슬픔에 응하는 방식이 조금씩 건강해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런 마음이랄까요. 그해 봄을 기억할 힘이 더 생긴 것 같아요. 여린 존재들을 지키지 않은 무책임한 그 어른들 보란 듯이 더 잘 살아내겠다는 다짐을 올해도 할 거예요. 교복을 입고 있던 그땐 어른들을 원망하는 것 밖에 못했지만, 지금은 저도 어른이 되었으니까요.
저는 이번 봄에도 역시나 이 작품을 꺼내먹으며 아주 건강하게, 잘 살아보려 합니다. 아니, 잘 살아내고 있습니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받님들의 봄도 궁금해지네요. 받님들이 봄을 지내는 방식도 공유해주시면 더 현명한 계절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끝으로, 이 멋진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해 준 다예와 정민에게 큰 감사를 전합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며 떠올려도 참 멋진 친구들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제가 이 사람들의 친구인 것이 언제나 자랑스럽습니다. 사랑스럽습니다.
다른 이의 반짝거리는 글들을 어떠한 대가도 없이 공짜로 받아 읽을 수 있다는 건, 제겐 너무나도 소중한 기회입니다. 이 프로젝트에 ‘벗님’으로 참여해 이 글을 보내게 되었지만 사실 ‘받님’으로서 더 큰 행복을 맛보고 있습니다. ‘방송작가’란 직업으로 살아가곤 있어도, 여전히 제가 쓰는 글이 부끄럽고, 작가란 수식어가 과분하게만 느껴지거든요.
벗님들이 보내주신 글들, 문장 하나 낱말 하나 귀하게 읽고 이 계절과 조금 더 사랑에 빠져보겠습니다.
저의 2023년 어느 봄이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