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서 죄송합니다 편집ㅈ... 받님.. 조아입니다.
글을 어떤 형식으로 써볼까 하다가, '자유주제와 형식과 분량 자유'라는 문구를 보고 '자야의 벗들은 창작의 고통을 즐기는 사람들???' 이라고 생각이 들었는데요. 어쨌든 편지 쓰듯이 써보자라고 결심했어요.
이 글을 자야의 벗들이 읽었을 때 옅은 미소를 지을 수 있으면 좋겠다. 고민거리를 가져가볼 수 있는 글이면 좋겠다. 여러 생각을 하던 중에 최근에 제 블로그 글과 관련된 재밌는 에피소드가 떠올랐어요. 물론 저만 재밌을 수도 있습니다 : )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대학에서 순수미술(조소)을 공부했는데요. 도제식 수업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1학년 때부터 기획자의 길로 가기 위해 여러 시도들을 했었습니다.(딴짓 한다고 학교도 자주 빠졌고요..ㅎㅎ) 그 중 하나가 '예술을 더 많은 사람들이 쉽고 재밌게 즐길 수 있게 할 방법이 뭐가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시작한 '미대호빠'라는 프로젝트인데요.
미대호빠 프로젝트는 '전시해설사-도슨트'라는 직업을 차용한 프로젝트였어요. 작가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대중에게 설득하거나 알리려고 할 때 해설이 꼭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작가 스스로가 도슨트가 되어야 하겠다'라는 결론을 내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스스로 마케팅 시장을 개척하고 PR하는 작가-예술가의 페르소나에서 '호스트'를 떠올렸어요. 이름에서 좀 거부감이 드나요? 그런 피드백을 많이 받았었어요. 하지만 20대 초반의 조아는 '어쩌라고' 하면서 계속 작업했더랍니다. 하핳.
당시 호스트와 예술가의 공통분모를 발견한 저는, 혼자 재밌어서 히죽거리며 그 글을 개인블로그에 간략하게 기록했는데요. 2018년에 쓴 글이라 잊고 살았는데, 최근 한 통의 전화 덕분에 이 글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한 달 전인가, 행사 참여자들이 문의전화가 오는 시기여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도 바로 전화를 받는데요. 밤 중에 아주 당황스러운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여보세요, 선수들 몇명 있어요?" 라는 얘기를 하시길래, 한 3초간 대답을 못했어요. "아~ 전화 잘못 거신 거 같습니다" 라고 바로 끊었는데, 바로 또 전화가 와서 안 받았어요. 뭐지 싶어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아 혹시?' 하는 마음에 블로그 검색 통계를 들어가봤어요. '홍대호빠'라는 단어로 네이버 모바일에서 검색 유입된 데이터가 있더라고요. 네이버 모바일 이미지 섹션에 홍대호빠를 검색해보니 제 글 이미지가 뙇 하고 쓰길래 한참을 웃었어요. 글에 '홍대'라는 키워드도 없는데, 검색 노출 페이지 상단에 뜨는 것이 의아하긴 하네요. 여튼 또 이런 전화가 올까 싶어서 해당 게시글에 연락처는 삭제했습니다.
이 프로젝트 말고도 좀 도발적인(?) 프로젝트를 많이 했었는데요. '예술가가 하고 싶은 걸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한 건 아니었어요. 그런 마음으로 하다보면 내 작업을 인정 받지 못할 때 괴로울 거 같았거든요.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하는 것의 당위성을 찾는 데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당시에 정리했던 논리는 '예술의 전문성은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였어요.
영국 출신 작가인 데미안 허스트는 한국 출신 작가 서도호 보다 전문가일까요? 한예종 출신의 ㅇㅇ작가가 나보다 전문가라는 것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한국에서 서울대, 한예종을 나왔느냐 하는 것은 학력 자본을 획득했다 것이고, 예술계에서 유명세를 얻는다는 것은 단순히 유명인이라는 것 말고는 상대적인 혹은 절대적인 전문성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요. 시각 예술 분야 뿐만 아니라 시인으로서 소설가로서 등단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특정 분야의 계 내에서 무언가를 하기 위한 도구들을 얻게 되는 거죠. 이 사람들의 노력을 평가절하 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닙니다. 'A라는 사람은 B보다 예술적 전문성이 높다'라고 평가할 근거가 모호하다는 생각을 정리했던 시간들이였어요. 생산자들 내에서도 소비자 간의 관계에서도 전문성을 증명하는 게 불가능하니, 나는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 라는 생각으로 작업을 했지요.
혹시 이 글을 보게 된 자야님의 벗이 있다면, 예술의 전문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제 편지는 여기서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