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고 싶지만, 당시에는 쓸 수 없었던 글을 썼다. 하루하루 살아내기 정신없었던 일상이었다. 어떤 글도 나의 상황과 감정을 조금도 설명할 수 없는 것 같았고, 온전히 전하고 이해받을 수 없다면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나도 가족들도 기억과 당시 마음이 희미하다. 더 옅어지기 전에 글로 붙잡고 싶었다. 당시 최선을 다했음에도 진작 알았다면 싶은 게 많다. 어디서도 꺼낸 적 없는 이야기를 썼다. 잘 돌보고 의존하며 살 수 있는 구조와 삶은 어떤 모습일지, 어디에 얼마나 의존하고 싶은지, 무엇이 필요한지, 돌봄에 대하여 꿈꾸고 상상하다 함께 머리를 쥐어 싸맬 이들이 반갑다.
10개월 만에 인천국제공항에서 가족을 만났다. 그동안 나는 핀란드 북부 지역인 라플란드에서 지냈다. 15킬로그램 정도 체중이 늘어난 탓인지 동생은 잠깐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반면에 나는 단번에 가족을 찾았다.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차에 짐을 싣고 집으로 가며 느꼈다. 알 수 없는 무언가 바뀌었구나. 내가 알던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같구나. 함께 사는 이들은 크게 의식하지 못할 변화였다. 어느 시점을 노화라고, 질병이라고, 장애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런 것들은 구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의식하지 않으면 아무도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던 엄마의 모습을 재정의한다. 아마도 엄마는 5~6년 동안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바뀌어왔다고 말이다. 종종 기억나지 않는 단어, 꼭 챙겨보는 티비 프로그램, 접촉 사고, 수용적인 태도, 늘어나는 스마트폰 사용 시간.. 그리고 삐끗 중심을 잃는 일. 어느 날 엄마는 산등성이를 내려가던 중 크게 미끄러졌다. 단순히 이마와 관자놀이 사이에 난 상처를 치료하러 갔던 일은 왼쪽 뇌혈관에 있는 혹을 발견하여 뇌동맥류 수술까지 이르게 된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다만, 수술 이후로 엄마의 인지기능이 가파르게 떨어졌다. 병원에서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다만 전두엽에 잔기스가 많이 있던 상태라고 했다. 아, 오래 사용한 무릎이나 어깨가 삐거덕대고 아픈 것처럼, 세월 따라 늘어나고 깊어지는 주름처럼, 엄마의 뇌에는 다른 신체보다 먼저 밀도 높은 세월이 지나갔다고 생각해야 하는구나.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곳이 가장 먼저 낡지 않는가? 빼어난 예술 감각을 예리하게 닦아두기 위해, 공립 고등학교 담임교사의 일을 수행하기 위해, 집안의 경제활동을 책임지기 위해, 또는 누구도 평생 모를 모종의 이유로, 엄마는 생각을 굴리고 머리를 많이 굴려야 했을까? 엄마의 동료 교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명예퇴직을 하겠다는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우리는 엄마 앞에서 계획을 말하지 않았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강박에 들어설 엄마의 좋은 먹잇감이 되고,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내일 새벽에 모종 심어야지’라는 얘기를 들으면 한밤중에 호미를 들고 밭으로 나갔다. ‘샤워하고 빨래 개야지’ 혼잣말과 함께 씻고 나오면 빨랫감이 정돈되어 있었다.
목재 가구와 미술 작품으로 꾸며진 우리집은 엄마의 작품과 같았다. 나는 옷을 살 때 엄마의 미감을 믿었다. 그런 엄마가 사는 옷이 점점 안 예뻐 보였다. 엄마도 생각과 다른지 종종 택배를 뜯고는 속상해했다. 구입한 이유를 알 수 없는 택배가 왔고, 날이 갈수록 늘었다. 생전 처음으로 바다포도를 먹어보고, 효능을 알 수 없는 건강즙을 마셨다. 아끼기도 부족할 재정 상황에 40만원어치의 영양제를 주기적으로 사는 건 받아들이기 어려워 엄마를 설득하기 일쑤였다. 엄마는 설득되는 이가 아니었다. 다른 데 주의를 끌어봐도 마음먹은 대로 해내고야 말았다. 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재정 관리를 엄마가 하도록 놔둬도 되겠느냐고 엄마 몰래 가족들에게 묻기도 했다. 이제는 드레스룸에 숨어 결제하는 엄마가, 가장 편안해야 할 가족 사이에서 도망쳐 숨는 엄마가 안쓰러웠다. 이해할 수 없는 소비와 낭비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쨌든 엄마도 날이 갈수록 어려워질 일을 하며 버텨내는 중이었을 테니까.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중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엄마가 차를 몰고 사라졌어. 거기 안 갔어?” 숨겨둔 열쇠를 어떻게 찾아낸 것일까. 나는 걱정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아빠는 택시를 타고, 엄마의 마음을 상상해 이곳저곳에 들러 본다. 엄마가 갈만한 곳에 전화를 돌렸다. 경찰서에 신고하려던 찰나 엄마는 내가 일하는 편의점 앞에 주차했다. 목욕탕에 가고 싶어 다녀왔단다. 목욕탕 주인은 돈이 없다는 손님을 그냥 들여보내 주었다(그냥 들여보내 준 것일지, 엄마가 막무가내로 들어갔을지 알 도리는 없다). 뒤늦게 목욕탕 값을 치르며 주인께 사과드렸다. 엄마가 무사히 돌아옴에, 인명사고가 나지 않음에. 아무도 다치지 않음에 안도하는 아찔한 날이었다.
엄마는 쉬는 날이면 정성 들여 집을 가꾸거나 누군가를 초대하는 사람이었다. 집에 손님이 머물지 않는 주말을 찾기 어려웠다. 손님이 방문하는 날이면 전축에서는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왔고, 직접 기른 채소로 만든 요리가 식탁 위에 차려졌다. 손님이 열 명, 스무 명씩 온 채로 밤이 깊기도 했다. 엄마는 여전히 사람을 좋아했다. 지인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수가 늘었다. 엄마의 메시지에 점점 당혹감을 느끼는 이, 한결같은 다정함으로 응답하는 이, 그만 메시지를 보내라고 설득하는 이, 욕을 퍼붓는 이··· 엄마의 채팅창에는 평생 은혜를 갚고 싶은 천사가 살았고, 내가 다 죄송한 이들이 있었고, 이해하면서도 밉고 원망스러운 이도 있었다. 엄마의 인간관계를 보며, 내가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을 살피기도, 인간관계란 몸이 낡고 병드는 순간 얼마나 나약하고 부질없는지 허망함을 느끼기도 했다. 엄마가 한 카페에 전화를 수십 번 걸어 영업방해를 하고 주인을 두려움에 떨게 했을 때, 나는 엄마의 전화 유심 카드를 훔쳤다. 아니 강탈했다. 엄마는 한동안 크게 화가 났다. 그는 여전히 똑똑했다. 내 방에 몰래 들어와 잠든 나의 엄지손가락에 나의 핸드폰을 가져다 대 암호를 풀 줄 알았다. 나의 지인에게도 기어코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의 눈으로 세상을 보겠다고, 사랑하겠다고 몇 번을 다짐하고도 몇 번씩을 엄마를 미워하고 짜증을 냈던 날들이었다. 엄마의 메시지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 되었고, 단순해졌고, 이내 단어의 형태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 엄마는 더 이상 화면 속 세상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밖으로 몸을 움직였다. 아빠와 하루에 서너 시간씩을 산에 오르고도 나와 산책하고, 동생과 산책했다. 아흔이 넘은 엄마의 엄마까지, 그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가족이 넷이나 있었다. 그럼에도 은밀한 탈출을 수없이 성공시켰다. 마을 이웃 댁에 무턱대고 찾아가서 차 얻어 마시기, 혼자 산에 갔다가 안경 잃어버리기.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몰래 나가기. 나는 밤이면 나가려는 엄마를 간신히 붙잡은 채 소리를 질러 가족을 깨웠다. 깊은 잠을 푹 자는 날이 손에 꼽았다. 엄마는 갈수록 뇌 기능이 떨어지며 인지능력과 함께 균형 감각이 약해졌다. 오른쪽 몸의 중심을 잡기 어려워했다. 나는 친구와 놀다가도 엄마가 응급실에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엄마의 오른쪽 얼굴과 몸에는 멍과 꿰맨 자국이 늘어갔다. 길바닥에 넘어져 머리가 깨지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는 날이 늘었다. 언제 사고가 나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날이 늘었다. 끝나지 않을 듯한 돌봄, 애원, 제압, 수용. 평온과는 거리가 먼 일상 속 나는 만신창이였다. 엄마는 멈추지 않고 아픈 티를 내지 않고 집념에 움직이고 걷고 산을 오르며 살아있음을 알렸다.
24시간을 마음에 긴장감을 쥐고 살아도 일은 한순간에 벌어진다. 엄마가 사라졌다. 동네 산책길을 뒤져 찾아 헤매었다. 아빠는 산을 뛰듯 올라가던 중 마침 같은 길을 내려오는 엄마를 발견했다. 가파르고 좁고, 엎어진 나무와 얽힌 나무뿌리로 위험한 길이었다. 내려오던 엄마는 가속이 붙어 뛰기 시작했다. 아빠도 전력을 다해 뛰었다. 엄마를 안아 넘어질 각오로 가까워지던 중 엄마가 넘어졌다. 엄마는 머리로 아빠 무릎을 박았다. 그 뒤로 한동안 아빠는 왼다리를 절었다. 되돌리고 싶던 트라우마가 되었을까, 재밌는 놀이로 기억된 것일까. 그 이후로 엄마는 산에 올라가 내리막길 뛰어가기를 반복했다. 동생은 산에서 뛰어오는 엄마를 계속해서 받았다. 언제 끝날지 모를 놀이. 스무 번이 안 되던 시점에 동생은 뛰어오는 엄마를 안고 함께 넘어졌다. 엄마는 동생과 안전히 쓰러진 것이 만족스러웠는지 다시 반복하지 않았다.
집에서는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하루 종일 났다. 아빠는 기저귀 사용을 용납하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지 않는 게 습관이 되면 그나마 남은 배변 조절 능력조차 상실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아빠는 잠들기 전, 엄마에게 언제라도 깨워도 좋다며 당부했다. 엄마는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언제라도 아빠를 불렀다. 어느 새벽에는 아빠를 깨워 화장실에 갔다가 아무것도 내보내지 않은 채 돌아오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새벽 2시부터 4시까지 침실과 화장실을 쉬지 않고 오가던 날에도 아빠는 엄마에게 짜증 한번 내지 않았고, 기저귀를 채우지 않았다. 돌봄 복지 서비스가 있는 줄은 알았다. 방문 목욕 서비스가 있대. 아빠는 엄마의 마음으로 삶을 살았다. 남모르는 사람이 엄마를 씻기면, 엄마는 말은 못 해도 얼마나 창피하겠니. 아무리 전문가가 온대도 아빠의 손길만큼 엄마를 대할 수 없어. 엄마는 다른 손길마저도 다 느낄 거야.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아빠가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다 할 거야. 아빠는 엄마를 너무 사랑했다. 지난 이십 년 동안 사랑한 것보다도 지금의 엄마를 더 사랑한다고 했다. 나는 이 부부의 사랑을 평생 이해할 날이 올까 궁금했다.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었다.
내가 언제 집에 오는지 궁금했던 엄마. 내가 답장할 때까지 문자를 보냈던 엄마, 아빠 몰래 차를 몰고 나를 데리러 왔던, 그래서 집에 가는 내내 심장을 졸이게 했던 엄마. 노트북을 쓰게 해 달라며, 자는 나를 깨우기 위해 생전 처음 내 뺨을 때린 엄마, 춤을 추자며 내 허리와 손을 잡고, 세 살 아이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던 엄마, 내 멱살을 잡고 흔들던 엄마, 내 방에 오줌을 싸던 엄마, 나를 엉엉 울게 만든 엄마, 존댓말을 쓰기 시작한 엄마, 고속도로 위에서 답답하다며 차 문을 열던 엄마, 엄마는 매일 변신했다. 나는 변신한 엄마가 내 엄마임을 받아들이려 애썼다. 존재함에 감사하고자 했다. 받아들일 즈음이면 엄마는 이미 저 멀리서 또 다른 변신을 했다. 엄마 밥 먹었어? 하고 물으면,
“엄마밥먹었어. 엄마밥먹었어. 엄마밥먹었어. 엄마밥먹었어. 엄마밥먹었어···”
엄마는 메아리가 되었다.
엄마는 홀로 움직임이 어렵다. 표정은 굳은 지 오래지만, 편안한지 아닌지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 인지능력이 떨어져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해도, 감정은 그대로 느낀다. 가끔,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엄마 입에 밥을 떠먹여 주는 동생에게 ‘너는 엄마가 귀찮지 않니?’하고 물었다. 괜찮다고, 하나도 귀찮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동생의 말에 엄마는 한참 손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엄마는 다 느끼고 있어. 미안함도 고마움도.
‘엄마 나 왔어’하고 퇴근한 내가 엄마에게 인사했던 겨울날 저녁 “엄마나왔어 엄마나왔어 엄마나왔어 엄마나왔어 엄마나왔어 엄마나왔어 엄마나왔어 엄마나왔어 엄마나왔어 엄마나왔어 ···근데 너 왜 이렇게 손이 차니?” 차가운 내 손이 닿자, 엄마는 내 손을 두 손으로 감싸 녹여주었다. 질문에 정확한 대답을 구사할 줄 모르는 엄마가 가끔 기적같이 표현하는 날에는 눈물이 났다. 사랑은 여전하구나.
엄마의 몸이 더 굳지 않기를 바라며 스트레칭을 돕고, 몸을 주물렀다. 엄마는 움직이는 시간보다 누워 있는 시간이 늘었다. 눈을 뜨고 있는 시간보다 감고 있는 시간이 늘었다. 초점 없는 엄마의 눈이 닿는 곳에 얼굴을 대어본다. 반사작용은 하는가, 조심스레 눈가를 만지면 눈을 감는다. 그렇게 엄마의 생명을 느껴본다. 함께 있지만 나와는 다른 세계로, 이전과는 다른 세계로 들어서는 엄마를 보며 멀어짐을 느낀다. 겨우 앉혀서 두유를 먹인다. 삼키기도 버거워 보인다.
엄마의 퇴직 후 만 11개월이 지난 때, 엄마는 하루 대부분 잠을 잤다. 엄마가 깨어 있을 때 나는 일하는 중이었다. 나는 3주 동안 라플란드에 다녀와야 했다. 마지막으로 깨어 있는 엄마를 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돌아와서는 엄마도 내 눈을 보아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잠든 엄마를 안았다. 마지막 인사가 아니기를 바라며 귓가에 소곤 인사를 했다. 엄마 안녕. 사랑해. 잘 다녀올게. 결국 마지막 인사가 되어버린 이 목소리를 엄마는 꼭 들어주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