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친구에게 일기 쓰기의 좋은 점을 설파했다. 그 친구는 며칠 일기를 쓰고서 '똥 싸는 것 같고 좋다.'고 했다. 그 말이 마음에 쏙 들었다. 글이 마려울 때가 있다. 그때 글을 쓰면 똥 싸는 것처럼 속이 편안해진다. 마음의 섬유질이 부족할 땐 변비에 걸린 듯 짧은 글 한 편도 끙끙 힘겹게 써낸다. 그럴 땐 글을 쓰고도 속이 시원하지 않다.
윌리엄 워즈워스는 '좋은 시'란 "the spontaneous overflow of powerful feelings.", 강력한 감정의 자발적인 흘러넘침이라고 정의했다. 시를 줄곧 써온 사람이라면, 마치 참아왔던 배설을 하듯 변기 대신 노트에 쏟아내는 순간을 공감할 것이다. 너무 급박해서 공중 화장실을 간절하게 찾아다니듯, 쌀 곳이 아닌 쓸 곳을 찾아 감정과 생각을 터뜨린다.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후련함. 마지막 문장을 마치고 내가 만들어 낸 뿌듯한 결과물을 보며 가벼움을 만끽한다.
존재에 대해 고민하다 인간은 곧 똥 만드는 기계라는 생각에 다다른 적이 있다. 인간의 모든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이 똥 싸기로 귀결되는 것 같았다. 먹고 싸는 사이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지만 결국에 모두 먹고, 싼다. 하지만 고귀한 인간은 자존심 상하는 '똥 싸기'보다 좀 더 멋진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본능에서 나아가 먹고 싸는 그 '사이'의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 그것이 우리가 끊임없이 고민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와.. 이렇게 원초적인 생리현상과 양극단에 있는 고차원적인 질문이 연결되었다.
일기 쓰기도 더 멋진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해 그 '사이'에 할 수 있는 하나의 행위다. '생존하는가'라는 물음보다 '어떻게 사는가?'라는 물음에 초점을 맞춘 고등한 똥 만드는 기계들은 그날의 쾌변보다 꿈과 사랑, 예술을 생각한다. 일기 쓰기는 꿈과 사랑, 예술로 가는 소화 과정이랄까.
헤밍웨이는 인생이 세상에 단 한 명뿐인 사람의 이야기기에 고귀하다 했다. 모든 삶에 아름다움이 있고, 모든 인간은 결국 각자의 예술을 한다. 술에 취해 흥얼거리는 콧노래, 연인과 통화하며 끄적이는 낙서까지. 방귀 뀌고 트림하듯 배설한다. 그렇게 저마다 똥보다 멋진 자신의 북극성을 그린다.
이상 글쓰기와 똥싸기의 닮은 점이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우리 모두, 잘 쓰고 잘 싸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