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번아웃을 겪으며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깊은 우울이 제 몸을 끌어당기는 통에 침대에서 한 발짝도 일어나지 못 했어요. 겨우 몸을 일으켜 출근을 한 날이면 여러 사람들을 미워하다 지쳐 스스로를 탓하게 됐죠. 내가 아프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지금, 사무실을 비롯한 공공장소에서 몰래 우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며 눈시울을 붉히고, 타인의 한마디 행동 하나에 의미 부여하며 엉엉 울더니, 가만히 있다가도 눈물이 터져 나오는 경험들이 이젠 조금 익숙해졌다는 말입니다. 한동안 ‘제목 없는 문서’처럼, 무언가 마무리가 덜 된 듯이 어설프게 지냈습니다. 기력이 없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누워만 있을 때에도 놓지 않던 게 하나 있었어요.
팔레스타인입니다. 실시간으로 업로드되는 가자지구 소식을 놓칠 수 없었어요. 비슷한 폭격, 공습 소식 같아도 매 순간 다른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현실을 외면하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힘들게 잠을 청하는 이 시간도, 누군가에게는 죽음의 공포와 불안을 견디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상담 선생님은 저를 향해 “스스로에게 인심을 쓰세요”라고 말했는데요. 몸이 초기 적신호를 보낼 때도 마음이 불편해 몸을 움직여야 했고, 나를 힘들게 하는 행동인 줄 알면서도 자꾸만 학살의 장소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이제는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곳에서 존재함으로써 저항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죽음과 폭력이 드리운 비극적인 장소가 아니라, 폭력 속에서도 서로 간에 연대하고 사랑을 나누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처럼 몸이 의욕적으로 움직여지지 않지만, 마음만은 멈추지 않으려고 해요. 기억은 시공간을 넘어 다른 존재와 연결될 수 있는 실마리이고 무기보다 세기 때문이죠.
받님들께 평화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평화 활동을 하며 처음 배운 건,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라는 인사말이었거든요. 다정한 이 인사말에 푹 빠져, 간단한 이메일을 보낼 때나 집회에서 발언을 할 때에 이 인사를 자주 건넸더랬죠. 메일링의 “평화해요!”라는 인사가 좋았던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가 평화롭게 느껴질 정도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전 세계가 위태롭습니다. 전쟁은 끝나지 않고, 서로를 향한 적대와 갈등, 폭력이 만연한 세상. 각국이 평화적인 해결책을 논하기보다 더 강한 무기와 군사력을 키울 궁리를 하는 세상입니다. 평화로운 적이 있었던가? 되묻고 싶기도 합니다. 세상의 평화도, 제 내면 평화도 사라진 요즈음, 어지러운 마음을 안고 받님들께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평화롭지 않은 세상에서도 평화로워질 수 있기를 소망하며, 평화를 요구하는 이들의 연대를 가득 담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