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시대'는 갔고 이제 '개인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이 떠돌기도 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아래 심화되는 양극화, 디지털 플랫폼 경제의 확대 속에서 개인은 점점 더 분절되고 고립되고 있다. 개인화 현상이 점점 고착되면서 타자와의 직접적인 만남과 소통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분절된 개인은 디지털 플랫폼에서 서로 쉽게 연결될 수 있지만, 그저 자신의 의견과 평가를 일방적으로 쏟아내고 있을 뿐이다. 사회로부터 분리된 개인들은 구체적인 장소로 나오길 꺼리고 자기와 다른 생각과 입장을 가진 타자와 소통하는 공론장으로 나오길 주저한다. 그들은 자기와 코드가 맞는 사람과의 온라인에서 비대면 만남을 선호한다. 이런 현상은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을 통해 더욱 강화되고 있다.] - 책 『시민사회운동의 미래는 있는가 : 성찰적 비판과 실천적 과제 / 공석기, 정수복,임현진』
작년 8월, 가장 뜨거운 여름 한가운데 이사를 했다. 이사하기 전 살던 곳은 학교 앞의 빌라로 친구들과 같이 살면서 소소한 일상을 쌓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지만 졸업을 하고 각자 삶의 터전을 찾아 이사하면서 나 역시 그 동네를 떠나게 되었다. 문득 생각해보니 서울에서 살게 된 지 8년이 지났지만 홀로 자취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혼자 살게 되었을 때 엄마가 말했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 다시 누구랑 같이 살기 쉽지 않다?”
정말 살아보니 그렇다. 타인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나의 삶의 방식을 하나씩 맞춰나가던 일상이 이제 오로지 나만 기준에 두고 지내게 되니 다시 돌아가기는 어렵겠구나 싶다. 동시에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노력과 사랑이 동반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혼자 살면서 마주한 나는 좋아하는 것보다는 싫은 것, 받아들이는 것보다 용납할 수 없는 것들이 정말 많은 사람이었다. 특히 내 안의 ‘좋아하는 마음’은 참 가볍고, 얕아서 쉽게 사라지곤 했다. 그건 시간이 지나면서 좋아하는 것의 다양한 모습을 마주하게 될 때 더 그랬다. 누군가는 ‘진정한 사랑은 그 다양한 모습을 다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던데, 어쩌면 나는 영영 사랑을 모르고 살지도 모르겠다. 문득 사랑은 사실 환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스럽다.
누군가가 싫을 때는 내 안의 싫은 모습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라는데, 참나 싫은 게 많은 것도 싫다.
싫은 것을 마주하는 것, 싫은 마음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것은 언제나 힘들다. 예전에 명상수업을 들을 때 ‘알아차림’에 대해 배웠다. 내 몸의 감각을 깨우고, 생각을, 마음을 인식하는 것을 ‘알아차림’이라고 하는데, 나는 늘 알아차리기 전에 도망쳐버렸다.
긴 시간 명상을 하다 보면 마음이 몸에 달라붙어 고통으로 찾아올 때가 있다. 그럼 계속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가만히 그 고통을 바라보고 알아차리는 수련을 한다. 그런데 나는 늘 고통이 찾아오면 나도 모르는 사이 잠이 들어버리거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가버리곤 했다.
그 때 명상 선생님은 “나를 담아내는 그릇이 있다면 알아주지 않는 마음들은 그릇에 얼룩처럼 남아요. 오랫동안 살펴보지 않은 마음은 얼룩이 진하게 남아서 더 보기 싫어져요. 그렇다고 계속 얼룩을 마주하지 않으면 얼룩은 흉처럼 계속 나에게 남겠죠.” 라고 말했다. 나를 담아내고 있는 그릇은 얼룩으로 알록달록한 상태일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가끔 모두가 나를 잊고 나 홀로 무인도에 떨어지는 상상을 하곤 한다. 또는 컴퓨터 전원처럼 세상이 한 번에 꺼지는 상상도. 살아가며 얽힌 그 모든 것들을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것들을 마주하고 살아갈 자신이 없을 때면 종종 많은 걸 놓아버리고 싶다. 동시에 그럼에도 여러가지를 놓지 않고, 안부를 묻고, 타인의 고통에 자신을 발견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경이로웠다. 저런 마음은 뭘까.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이 궁금증을 안고 살아가던 어느 날, 친구가 결혼했다.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결혼하는 것을 보면 속으로 ‘어떻게 저렇게 무모하지..왜? 어째서? 뭘 보고? 너무 일찍 아닌가, 한 사람과 앞으로 반 평생을?’ 이런 생각만 했었는데 처음으로 ‘용감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마주하게 될 싫은 모습들도, 새롭게 알게 될 가혹한 진실에도 너를 놓지 않고 함께하겠다는 약속, 그리고 그 약속을 굳건히 이행하겠다는 다짐. 그 자체만으로 정말 용감한 사랑이라고 느꼈다. (다시 돌아보니 사실 그 친구는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지도 모르는데 나 혼자 멋대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감동받았다.)
이 글을 쓰다가 궁금해서 쳇GPT한테 사랑에 대해 물어봤다.
“사랑은 다양한 감정, 행동, 그리고 관계에서 나타나는 깊은 애정과 관심을 의미합니다. 사람에 따라 사랑의 의미가 다를 수 있지만, 대개는 타인에 대한 배려, 이해, 존중, 그리고 헌신이 포함됩니다. 사랑은 가족 간의 사랑, 친구 간의 사랑, 연인 간의 사랑 등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며, 행복, 기쁨, 때로는 아픔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철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사랑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강력한 감정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사랑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사람들을 연결하고,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힘으로 작용하죠.”
이 답변을 받기 위해 2.9Wh의 전력을 소비했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아프다. 다시는 이런 질문은 하지 말아야지.
어찌됐든 이 독백 같은 글의 결론은 ‘어쩌면 사랑은 점점 더 분절되고 고립되는 세상에서 싫은 마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넘어 타인을 연결시키고, 끝내 서로 놓지않고 함께 살아가는 마음이지 않을까?’ 정도이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어설픈 글을 쓰게 해준 자야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이 글을 보고 있는 모두 사랑을 하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그럼 이만. 모두 사랑하세요 : 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