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님, 평화해요! 오늘의 JUNE 벗님을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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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은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프로덕질러입니다. 한참 피아노 연주에 빠졌을 때 자연스레 준을 찾았고요. 긴 사연 설명 없이도 그저 조성진 씨를 예찬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영화, 무대, 출판, 축제 등 어떤 형태 그리고 어떤 장르에 빠져도 준의 벗이기에 외롭지 않습니다.
제가 가장 경모하는 것이 바로 덕질입니다. 진화된 인간만(?)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것을 충분히 좋아하는 마음이, 간단해 보이면서도 매우 힘겹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부지런하고 풍요로운 사랑에서만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준은 문화예술의 작품, 미학뿐만 아니라 산업에게도 귀 기울이고 눈길을 건넵니다. 최근에는 DJ로 데뷔도 했습니다. 그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활동가라고 달리 불러봅니다.
‘그냥 좀 살자, 우리. 대충 서로를 구해주면서. 우리는 각자가 처한 곳에서 각자의 할 일을 하면서, 때로는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면서, 갈등을 빚으면서, 그래도 대화를 나누고 해결책을 찾으면서, 그렇게 살아남음으로써, 이 세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데려갈 수 있다. 잃어버린 개를 찾는 트윗을 RT하면서, 벌거벗은 왕을 비웃으면서, 오늘 본 좋은 영화에 대해 얘기하면서, 임산부석을 비워두면서, 성차별적인 농담에 무표정으로 반문 하면서, 노키즈존 리스트를 공유하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기업 제품을 불매하면서, 깜짝 놀라게 맛있는 당근 뢰스티 같은 레시피를 나누면서,생각보다 느린 변화에 염증이 나도 포기하지 않으면서, 서로에게 좋아요를 눌러주면서, 그렇게 서로를 구해주면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 '일개 개인'이라 무력해지는 당신에게, 트럼보> 중’
언젠가 준이 공유한 글입니다. 그에게 편지를 쓴다면 꼭 똑같이 마무리할 것만 같습니다. 라이즈 멤버 이름을 알려주면서, 뉴욕 필하모닉 영상을 보면서, 일주일 뒤에야 카톡에 답장을 남기면서, 이 글을 슈퍼주니어 데뷔일에 보내는 밉살스러운 장난을 좀 쳐보면서, 그렇게 서로를 대충 구해주며 우리 살아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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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십 년간 한 그룹을 좋아하게 만들었을까? (Feat. 강한 몰입)
초등학교 5학년 12살부터 2018년 22살까지 2세대 초기 아이돌 슈퍼주니어를 진득하게 좋아했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던 최애와 차애의 제대 팬미팅과 유닛 활동 팬싸인회를 다녀오고 나서 ‘할 만큼 했다…미련 없이 사랑했다…’라는 생각과 함께 자연스레 완덕인지 탈덕인지 모를 것을 홀가분하게 했다. 지금은 코로나 이후로 다시 케이팝 망령이 되어 간간이 덕질을 하지만, 그때처럼 덕질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리감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과연 그 시절 무엇이 나를 몰입하게 만들었을까. 지난 덕질과 그 안의 나를 떠올려 보았다.
슈퍼주니어는 신비주의를 내세우던 SM의 아이돌과 달리, 친근한 이미지를 앞세우는 '탈SM적' 아이돌이었다. 이들은 더이상 친근할 수 없을 것처럼 굴더니, 결국 언론 사회면과도 친해졌다…. 사회면에 등장하는 여러 사건사고들로 인해 대중들의 원색적인 비난을 한몸에 받았다. 때문에 팬덤 분위기는 대체로 날카로웠고 놀라울 정도로 내부 결집력이 강했다. 그리고 타인과의 ‘적당한 거리감’이란 걸 설정할 줄 모르던 중학생이었던 나에게 이러한 시련은, 그 어느 때보다도 아이돌에게 강한 몰입을 불어넣어 주는 장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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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팬덤: 한의 정서 (feat. Only 13)
10년간의 긴 덕질을 끝내기 어려웠던 이유는 그룹의 ‘서사’와 ‘정체성’ 때문이었다. 그룹이 지닌 서사는 파리지옥처럼 강력했고 깊이 빠져들게 했다.
당시 SM엔터테인먼트는 슈퍼주니어를 일본 그룹 AKB48처럼 ‘졸업 체제 아이돌’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하지만 “U” 활동으로 큰 인기를 얻고, 규현을 영입 후 정식 그룹 체제로 전환한다고 선언했다. 그룹의 존속에 팬들은 당연히 기뻐했다. 하지만 2집 [돈 돈! (Don’t Don)] 활동 당시, 다시 멤버 추가 영입설이 돌았고 다시 졸업 체제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팬들의 불안은 높아졌다. 불안감은 팬덤을 움직이게 했다. 팬덤 내에서는 기존 13명 그룹 체제를 유지하고자 다양한 영입 반대 시위 운동을 벌였고 뼈에 새겨질 만큼 “ONLY 13”을 죽어라 외쳤다. 팬덤의 격한 반발에 추가 멤버들의 정규 그룹 편성은 무산되고, 중화권 유닛 그룹 멤버로 구분되었다.
‘그 시절’ 팬덤 문화는 모든 멤버를 아껴야 하는 ‘올팬' 기조의 덕질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팬덤 기조에 반하는 시스템을 들고 오는 소속사의 행보는 멤버들의 행복과 나의 행복을 해치는 행위였다. 멤버들 간의 끈끈한 우정과 관계성, 이들이 뭉쳐 만들어 내는 시너지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멤버 변동’이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가 있었을까. 뒤늦게 입덕을 한 슈퍼주니어 팬이라도, 이 사건을 알게 되면 곧바로 소속사를 믿지 못하게 되는 계기가 되곤 했다. 나 역시 이 사건 이후에 입덕했지만, 나의 철제 필통과 공책은 ‘Only 13’ 낙서로 가득했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 그때를 떠올려보면 이러한 사건은 어린 멤버들에게나, 팬들에게나 꽤나 폭력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특정 조건문이 그룹의 정체성이 되고, 조건문이 주입한 ‘불안감’으로 팬덤을 결집시키는 것. 그리고 팬들의 각종 실천적 행동을 통해 얻어낸 성취(?)로 덕질에 효능감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 SM엔터테인먼트는 이러한 서사가 팬덤에게 큰 결속력과 성취감을 준다는 것을 알았는지, 비슷한 체제의 그룹을 다시 선보였다.
바로 2016년에 데뷔한 청소년 그룹 NCT DREAM이다. 동심 가득한 유닛의 이름처럼, 더이상 아이가 아닌 '성인'이 되면 그룹을 졸업하는 형태였다. NCT DREAM의 연장자 멤버 마크는 2018년 졸업식을 하고 그룹을 떠났다. 이후 4명의 00년생 멤버들이 성인으로 접어들면서 불투명한 그룹의 행보로 인해 멤버들과 팬들 모두 불안감이 증폭되었다. 하지만 팬들의 지속적인 요구로 NCT DREAM은 2020년도 졸업 멤버였던 마크까지 재합류하며 ‘멤버 고정’ 정규 유닛으로 재편성되었다. '서사'를 얻은 NCT DREAM은 발매되는 앨범마다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엄청난 저력을 보였다.
최초의 예능돌 vs 최초의 믿거돌
온갖 예능의 패널로 등장하고 웃기기 위해 추한 모습도 서슴없이 보였던, 오히려 나서서 했던 아이돌 그룹이 슈퍼주니어 말고 더 있었을까? 그만큼 대중에게 친근함을 내세우며 거리를 급격하게 좁혔지만, 그룹을 알리기 위해 예능에서 보여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오히려 가수로서 음악 활동에 장애물이 되기도 했다.
3집 [쏘리쏘리 (SORRY, SORRY)]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이후 이들의 음악적 정체성은 ‘SJ Funky’라는 이름으로 자리했다. 강렬한 EDM과 후킹한 후렴구, 말을 건네는 듯한 친근한 가사로 대중에게 어필했다. 하지만 4집 [미인아]에서도 같은 패턴의 음악을 들고오자, 대중에게 “믿거(믿고 거름)ㅉㅉ"이라는 적나라한 평을 들었다. 노래가 외면당하기 시작했다.
당시 나를 비롯하여 수많은 팬들은 “타이틀 곡은 취향이 아니더라도 수록곡 중에 좋은 음악이 많아요ㅜㅜ 한 번만 들어보세요!!”라고 해명하듯 구구절절 대댓글을 달았지만 통하지 않았다. 해명이 곧 변명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팬들의 말은 영향력이 없었다.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에게 사람들의 차가운 반응은 꽤 큰 상처로 다가오기도 했다. 취향을 부정당하는 것 같은 기분은 물론, 선입견 하나만으로 무언가를 더이상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쉽게 판단 내리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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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주니어는 강렬한 음악에서 벗어나 능글맞고 여유로운 옷을 입고 서서히 ‘믿거 그룹’이라는 오명에서 서서히 탈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케이팝 마케팅 방식이 진화를 거듭한 지금, '예능돌' 이미지는 하나의 마케팅 요소가 되었다.(Feat. 세븐틴) 무대에서 보여주는 매력과 다른 편안하고 친숙한 매력으로 오히려 입덕과 영업의 포인트로 소비된다. 또한 지금은 소속사 내 자체 제작 콘텐츠를 주로 선보여서 공중파 예능과 달리 미리 위험 요소들을 걸러내며 팬들의 취향에 맞는 예능감까지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산업이 고도화되고 나서야 '예능돌'과 '믿거돌'은 더이상 동의어가 아니게 되었다.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미인아]의 실패는 과한 ‘남성성’ 어필을 사람들이 우스꽝스럽게 보았던 것 같기도 하다. 예능에서 쉽고 가벼워보이는 이미지였는데, 갑자기 음악적으로나, 비주얼적으로 과하게 남성성을 어필하고 찌질한 모습도 가사로 서슴지 않게 보여줘서 가공없는 현실 남자의 모습을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덕질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feat. 건강한 덕질)
전 세계적으로 케이팝의 놀라운 성과들로 인해 케이팝 팬덤을 분석하는 자료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대부분 케이팝 팬덤의 엄청난 화력에 주목했다. 그들은 케이팝 팬덤을 가늠하고 이해하기 위해 정량적인 지표들로 팬덤을 분석했다. 그러나 그들은 접근부터 틀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느끼기에 그 화력의 코어는, 사실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마음들이 모인 결과다. 결국 사랑인 것이다.
앞서 풀어놓은 일화들 속에서 나는 아티스트가 받는 원색적인 비난 댓글을 눈에 붉을 켜며 모니터링을 했고 가차 없이 신고 버튼을 눌렀다. 그 시절에는 네티즌들의 커뮤니티가 한정적이었고 ‘알고리즘’이란 것도 없었기에 인터넷에서 접하는 것들이 서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말인즉슨, 아이돌들이 자신의 평판은 물론 악성 댓글을 보기 정말 쉬운 환경이었다는 것이다. 나의 아이돌이 상처받는 걸 보고 싶지 않았기에, 이유 모를 부채감을 느끼며 부지런히 손을 놀릴 수밖에 없었다. 당장 중요한 ‘나의 일’보다 ‘덕질’이 중요한 순서로 여기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시간과 마음을 정말 많이 쏟았다.
미련도 없을 만큼 불태운 그때의 덕질로 인해 얻은 교훈이 있다. 첫째는 탐구하기 전에 경멸하지 말자는 것, 둘째는 덕질할 때 아이돌과 적당한 거리감을 두자는 것.
사실 적당한 거리를 둔다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다.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니”라는 가사처럼, 마음은 항상 내 마음처럼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케이팝 산업 자체가 팬덤의 ‘강렬한 몰입’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기 위해 얼마나 매혹적인 전략을 짜고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애쓴다. 서로의 마음이 빚이 되지 않기 위해, 너와 내가 각자 스스로 온전히 존재하기 위해, 내 삶의 바운더리를 잘 지키며 아이돌의 삶 또한 존중하고 싶다.
결국 본질로 돌아간다. 그들이 선보이는 음악과 무대를 있는 힘껏 몰입하고 순간의 행복함을 느끼는 것. 그게 내가 덕질을 통해 가장 얻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그들의 모습을 외면하지 않고 계속해서 지켜보며 ‘목격자’가 되어주는 것. 이것이 내가 아이돌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10년간의 덕질이 남기고 간 흔적이란 이런 것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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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로 가는 것과 그곳으로 다시 돌이가는 것 사이의 윤리적인 간극이 점점 더 크게 느껴지는 바람에 비난받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게 존중이야. 하고 나는 생각했다. 보는 것, 계속해서 보는 것, 필요한 것을 얻자마자 시선을 돌리지 않는 것. 존중이란 피사체가 늙어가는 모습을, 점점 더 복잡해지는 모습을,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위해 써준 내러티브를 전복하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는 일이다. 아직 다 끝낸 게 아니야. 충분히 보지 못했어라고 말할 만큼의 지구력과 겸손성을 갖추는 일이다. 아니는 이렇게 썼다. "전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해요“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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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5일
+) 이전에 써놓았던 글을 다듬어 여러분께 보내드리지만, 지난 며칠 사이 벌어진 ‘라이즈 홍승한의 복귀와 번복 사건’으로 인해 ‘현재 이 시점에 어울리는 글인가?’라는 질문이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철저히 지난 순애 덕질에 대한 경험담과 이에 대한 회고 정도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라이즈 홍승한의 복귀와 번복 ‘사건’이 아닌 ‘참사’로 부르고 싶을만큼 케이팝 아이돌의 노동 현실의 단면을 보여준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신자유주의 케이팝 급행 열차 속에서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팬덤 모두 엄청난 속도로 가속하며 달려오다가 ‘아이돌 팬덤의 펨셀화’, ‘팬덤의 소비자적 정체성 부상’라는 중간 종착지에 다다랐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그동안 전조 증상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고 가속하며 달려왔지만, 이제는 제동을 걸 때이다. ‘하이브’가 망해야 케이팝 산업과 문화가 정상화되는 것이 아닌, 그 안에 속해 있는 모든 구성원 그리고 각 집단이 성찰하고 이제와는 다른 방향으로 노선을 틀어야만 지속가능한 산업과 팬덤 문화가 형성될 수 있지 않을까?
FROM. 가을에 부쩍 아파오는 모든 이에게 벽과 천장이 두렵지 않길 바라며..
Thanks to. 끝으로 자야, 마공, 성주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득 담아 보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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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는 가운데 연대는 점점 더 강력해진다.
바로 거기서부터 썩지 않는 논리와 힘과 품위가,
그 무엇에도 꺾일 수 없는 품위가 만들어진다."
<『우리의 문장은: 세편의 영화, 세개의 문장』, 「깃발, 창공, 파티」> 中
애정을 담아, 마공과 자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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