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택근무까지 하며 직장 생활에 찌들어 있다가 오랜만에 생긴 주말의 여유에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대도시의 사랑법>을 예매했다. 구재희…. 오사구…. 오늘만 사는 구재희. 그리고 장흥수.
나는 매년 연말마다 올해의 영화를 꼽는데 어쩌면 올해의 영화는 <대도시의 사랑법>이 될 수도 있겠다. 열아홉에는 <소공녀>의 미소가 좋았고, 스물다섯에는 구재희와 장흥수가 좋았다.
나도 날 아직 모르겠는데 사람들은 어떤 사람으로 나누고 싶어 하지? 게이 친구는 나의 베프인데 이 관계를 얼마나 더 설명해야 하지? 집과 돈이 없어서 죽어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부자들은 왜 자꾸 집을 사대는 거지? 혼자 영화 보는 내내 혼란스러운 질문과 속 시원하지 못한 답변이 머릿속을 떠돌아다녔다.
퀴어이자 소수자로 사는 삶, 사회 초년생이 홀로 서울에서 버티는 삶. 모든 날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돈이 없어서 침대 위에 작은 옷장이 있던 고시텔에 살던 날, 반지하 자췻집에 둔 나무 선반이 일주일 만에 곰팡이가 펴서 울던 날, 트라우마로 방에만 갇혀있던 날, 처음 본 이에게 내 정체성을 증명해야 했던 날, 이상한 사이트에 내 정보가 팔렸던 날.
자꾸만 마음이 가난해지는 날들이 반복되면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살고 싶지 않은 날들이 되어 날 괴롭혔다. 살고 싶지 않은 이유는 얼마든지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던지. 그럼에도 죽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나에게 재희 같은, 때로는 흥수 같은 이들이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을 너무 사랑해서 만나면 별것도 아닌 걸로 웃고, 술 먹고, 클럽 가서 춤추고, 가끔 담배도 피고, 서로 연애 고민 들어주며 낄낄거리고… 그냥 맛있는 걸 나눠 먹기만 해도 다 풀려버렸다.
우리라는 게 좋아서, 덕분에 내가 단순해 져버려서 하루라도 더 같이 놀고 싶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잘 살고 싶어졌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친구들에게 안부를 물었다. 서울에 사는 친구, 파주에 사는 친구, 전라도에 사는 친구, 프랑스에 사는 친구 등등…. 내 친구들이 어떤 날을 보내고 있는지, 이 영화는 봤는지, 오늘은 빻은 놈을 만나지 않았는지, 새로운 재밌는 일이 있었는지, 새로운 사랑이 나타났는지 묻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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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친구들아. 잘 지내니? 덕분에 나는 스물다섯까지 살아냈어. 내가 주저앉던 순간들에 곁을 내어준 너희들을 기억해. 덕분에 난 많이 씩씩해졌고, 같이 나눌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준비해 뒀어. 재희와 흥수를 닮은 우리가 오래오래 잘 살았으면 좋겠어. 더 이상 내가 나이고, 네가 너인 게 우리의 약점이 되지 말자. 만나는 날 서로를 꼭 껴안아 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