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이하며, 받님에게
받님, 안녕하세요. 니나 벗님입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받님에게 무슨 글을 보낼까 많이 고민했어요. 그러다 제 메모장 한켠에 전하지 못한 편지 몇 조각이 있던 게 생각났어요.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적었지만 잊어버려서, 부끄러워서, 용기가 나지 않아서 끝끝내 건네지 못한 그런 편지 말이에요. 그중 한 편을 꺼내 받님에게 보내면 어떨까 해요. 누군가에게 닿을 때 비로소 제 몫을 다하는 게 편지니까요.
아, 받님이 이 편지를 읽는 날이 4월이잖아요. 제게 4월은 여전히 목소리가 떨리는 그런 날이에요. 때문인지 말보다 글이 편해 매해 무엇이든 조금씩 쓰곤 해요. 이건 작년 이맘때 봄을 맞으며 누군가를 떠올리며 적었던 편지예요. 그럼 받님이 편지의 새 주인이 되어 잘 읽어주길 바랄게요.
받님. 니나에요. 좋은 봄날을 괜히 산통을 깨는 게 아닌가 싶지만, 받님에게는 한마디 건네고 싶어서 몇 자 적어봐요.
사실 저는 봄으로부터 어떤 화사한 기운보다는 냉소와 무기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9년 전 봄날, 제가 막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적에, 바다 밑으로 배 한 척이 가라앉았는데요. 저는 저와 비슷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구해지지 않는 걸 두 눈으로 지켜봐야 했어요. 국가와 정부,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는 감각은 성인이 된 지금도 생생해요. 그래서 저는 더 치열하고 바쁘게 지냈어요. 저를 지킬 수 있는 건 저밖에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럼에도 저는 오늘 편지를 꼭 쓰고 싶었어요. 당장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과제가 한 무더기인데도 편지부터 쓰고 싶었어요. 왜일까요? 이 편지가 그 이유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편지를 받은 받님과도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길 진심으로 바라요.
조금 덧붙이자면요. 저는 지금의 제가 그해 봄날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후 오랜 시간 그때 생겨난 질문과 고민을 던지며 지내왔거든요. 사회에 일어나는 여러 일을 마주할 때마다 저는 다시금 그날로 돌아가곤 해요. 제가 지금까지 세상을 읽는 시각은 그해 봄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에요.
제가 던진 질문에 답을 듣기까지 앞으로도 국가, 정부, 사회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것 같아요. 최근 정세를 보면 바라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릴 것 같기도 해요. 그렇지만 매해 다시 돌아오는 봄을 맞으며 저는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걸 느껴요. 작년까지는 다른 이들에게 말 붙이는 것도 힘들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받님에게 편지도 했잖아요?
저는 올해 이렇게 봄을 나요.
받님과 함께라서 다행이에요.
니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