뿣뿡을 아주 존경합니다. 그의 의도치 않은 행동이 큰 위안으로 번진 적이 참 많았습니다. 거리와는 상관없이 느껴지는 연결감이 깊습니다. 처음 만나기 일주일 전 우연히 그의 칼럼을 읽었다던가, 주민번호 뒷자리가 두 자리만 다르다는 점, 각자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똑같은 노래를 예약했다는 재미난 우이들이 그와의 시간을 즐겁게 회상하게 만듭니다.
뿣뿡을 보면 칠엽수라는, 이미지보다 그 단어가 먼저 떠오릅니다. 매번 지나치는 길가의 나무 이름이 문득 궁금했고, 마침 옆에 있던 식물계 척척박사 뿣뿡에게 물었습니다. 사실은 척척학사 쯤 되었던 건지 그도 모른다고 답했지요. 다음날 그는 그 나무가 ‘칠엽수’라는 것을 알아냈고, 그 순간 저는 칠엽수 아래 잠시 멈춰 이름을 알아내던 그를 발견했습니다. 마주칠 때마다 초면인 것마냥 어정쩡한 인사로 검연쩍게 만들던 그를 정다우면서도 근엄하며 어설프고도 다정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뿣뿡은 평화를 바라는 활동가입니다. 광장에 나간다면 높은 확률로 그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산에서도 자주 볼 수 있을 거예요.
이유도 말하지 않고 사람들이 이탈한다. 길이 길어진다. 밤도 뒤처진다. 떠났던 햇빛이 다시 떠난 자리를 비춘다. 돌아와야만 이탈이 아닌가? 지평선은 이미 달라져 있는데. 끝을 믿지 못하면 이탈인가? 아무도 끝에 대해 말하지 않는데.
미워하지 못하고 원망한 사람들이 이탈한다. 길어진 길이 발자국을 잊지 않는다. 새겨진 발자국만큼 조금 더 낮아지는 길. 하나의 발자국만을 남긴 새에 대하여
공중을 바라본다. 떠난 자리가 가득하다.
공중이 잊지 않는 새들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공중을 물어다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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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사람을 가로막는 철망이 시야를 가로막지 않는다. 펜스 안팎으로 눈빛을 주고받는다. 어떤 이들은 눈빛을 등지고 돌아앉아 펜스가 가두지 못한 풍경을 바라본다. 차도 너머로 우거진 수풀들. 손을 잡고 둥글게 모여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펜스 안에서 철망을 통해 내다보는 바깥은 조각나 있다. 갈라진 눈빛으로 펜스 너머의 바다를 직시한다.
멀지 않은 곳에 게이트가 있다. 게이트 앞에 줄지어 늘어선 트럭. 울려 퍼지는 노래와 구호. 아무것도 밀어내지 않는 노래가 한 소절씩 끌려나간다. 침묵은 노래의 고립이 아니다. 잠긴 목에서 끓어오르던 물결이 땅속으로 스미고. 물결치는 소리를 따라 이 땅에 발을 들였다. 바다가 여기에 있어서 사람이 여기에 있었다. 끝없이 돌아오는 파도에 발을 담그면, 때때로 떠나간 사람들의 표정이 밀려왔다.
철망 너머 조각난 바다를 눈 속에 그러담기 위해 바다를 건너온 사람도 있었다. 잠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면, 발을 담그지 않아도 파도가 밀려온다. 언제나 여기를 가능하게 하는.
"새들이 날고 바람이 불고 눈이 오는 일처럼 두려움을 버리는 일을 돕는다 세상에 가장 아픈 곳은 없다 아픈 곳이 있다 못 견딜 외로움을 달래는 별들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 괴로울 때 별들은 움직인다 적대감을 푸는 일 제압과 삼엄한 경계와 성난 공격의 날 선 경쟁의 자세를 해제하는 평화와 해방의 언덕에 어린 살구나무가 살구나무로 자라는 일을 돕는다 외면과 잔인한 무관 슬픔 격노 영혼의 소비 우리는 무엇에 격노할 것인가 전쟁 고통받는 아이들의 두려운 눈 버림받은 어른들 공사장 돌 틈에 끼인 풀벌레 울음소리 세상은 괴로움 천지다 시는 가진 것이 없어서 그들 곁으로 말없이 걸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