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덜컹이자 다람이가 내 품에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다람이가 자꾸 도망가려고 하잖아. 누나를 싫어해서 그래. 이리 줘.”
여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얼굴을 빨갛게 익힌 동희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얄미운 말투로 말했다. 동희는 다람이를 움켜잡고는 자기 품속으로 밀어 넣었다.
“야. 조심 좀 해. 이래서 나 혼자 오려고 했던 거야. 기사 아저씨가 쳐다보잖아.”
동희를 겁주려고 한 말이었는데 정말로 운전대 옆 거울로 기사 아저씨의 눈썹 사이의 주름과 눈이 마주쳤다. 콩. 심장이 뛰었다.
버스가 우리가 다니는 초등학교 정류장에 멈추었다. 문이 열리자 아이들의 비명 같은 웃음소리와 질서 없는 호루라기 소리가 섞여 정류장까지 울렸다.
“너네는 오늘 학교 안 가니?”
기사 아저씨가 주름과 어울리지 않는 말투로 우리에게 물었다. 콩. 또 심장이 뛰었다.
“지금 숙제하러 가요. 관악산에서 낙엽 주워야 해요.” 멋이 없는 핑계였다. 나는 뛰는 심장 때문에 눈이 잘 웃어지지 않아 괜히 더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누나. 얘 똥 쌌어” 동희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아저씨의 눈이 점점 위아래로 작아지며 우리를 향해 시선을 멈췄다.
“야. 너는 똥 안 싸냐?” 나는 동희를 한번 꼬집고 싶은 충동을 누나답게 참고 대신 힘껏 노려봐주었다. 아저씨는 여전히 작은 눈을 하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도망치듯 내렸다.
동희를 데리고 오는 게 아니었다. 다람이는 친동생 같은 다람쥐라며 꼭 나와 같이 가겠다는 동희의 얼굴에는 학교에 안 가는 기쁨이 더 크게 그려져있었다. 얘도 학교에 친구가 없나 보다.
“너 때문에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해. 버스 두 번 탈 돈 없어.”
얘는 미안하지도 않은지 대답은 안 하고 나뭇가지를 주워서는 땅바닥에 탁탁. 동생이 한 명 더 있었으면 엄마가 차마 떠나지 않았을 거라고 아빠가 그랬다. 나는 이왕이면 여동생이면 좋겠다. 아니다. 이미 엄마는 떠났으니 동생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빠는 우리가 학교를 빠진 걸 알아도 화내지 않을 거다. 우리 둘이서 다람이 가족을 찾으러 관악산에 간 걸 알아도 웃을 거다. 아마 그런 재밌는 일을 왜 자기를 빼고 했냐며 서운하다고 하겠지. 엄마가 집을 나간 이후로 아빠는 더 많이 웃고 화는 내지 않는다. 밤중 화장실을 갈 때 아빠 방을 흘깃 쳐다보면 어김없이 아빠는 옷장을 열고는 엄마의 원피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는 사랑을 찾아 떠났다. 아빠가 그렇게 말했는지 엄마가 말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확실한 건 엄마는 중요한 사랑을 찾아 떠난 거다. 엄마는 어느 더운 밤 열 밤 후에 데리러 오겠다고 내 귀에 속삭이고는 없어졌다. 열 밤. 스무 밤. 이제는 셀 수 없는 밤이 지나고 있었다.
도착한 관악산 입구에는 <도토리를 줍지 마세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 밑에서 사람들은 도토리를 줍고 있었다.
“근데 다람이가 엄마 아빠를 못 찾으면 어떡해?” 동희가 도토리를 하나 주워 다람이에게 주며 말했다. 사실 난 다람이를 보내주기 싫었다.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살아 움직이는 건 얘가 처음이다. 내 방을 다람이에게 내줄 마음도 있었다. 다람이가 밥을 잘 먹지 않는다. 엄마가 집을 나가고 나는 며칠 동안 아이스크림만 먹었었다. 얘는 아이스크림도 없으니까. 오늘은 꼭 가족을 찾아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나는 삼 일 전 아픈 다람이를 처음 발견한 곳에 별 모양 (내 기준) 돌멩이를 올려두었다. 한 번에 찾을 수 있을 거 같았는데 막상 와서 보니 모든 돌멩이가 다 똑같아 보였다.
한참을 땀 흘리며 별 모양 (동희는 코끼리 똥 모양이라고 우겼다) 돌멩이 찾으러 다니고 있었는데 언제 없어졌었는지 동희가 멀리서 뛰어오고 있었다.
“배고파!”
아까는 다람이를 걱정하며 눈을 글썽이더니 지금 배고픈 게 문제인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 배에서도 꼬르륵 소리가 났다. 가방에서 김밥과 땅콩을 꺼냈다. 벤치에 땅콩을 쌓아 다람이용 땅콩 천국을 만들었다. 다람이를 그 앞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다람이가 땅콩 냄새를 맡고 있는 걸 보니 내 눈도 웃었다.
앞으로는 참치김밥으로 가져와달라며 툴툴거리며 두 개씩 입에 밀어 넣는 동희마저 귀여워 보였다. 나도 김밥을 하나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하늘을 올려 봤다. 바람이 불었다. 푸른 하늘에 빨간색 꽃잎 같은 낙엽들이 내 눈앞에 쏟아졌다. 꼭 시간을 멈출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
동희의 불안한 외침에 정신 차려보니 땅콩 천국에는 다람이가 없었다. 다람이는 어떤 커다란 나무에 올라가고 있었다. 나와 동희는 재빨리 뛰어갔지만 다람이는 내 눈에서 금방 사라져 버렸다. 쿵. 심장이 또 뛰었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누나. 사실 다람이가 이거 주고 갔어.”
동희의 통통한 손을 펼치니 도토리 하나.
“누나. 누나. 누나. 흥부도 제비 다리 고쳐주고 씨앗을 받은 거 맞지. 누나, 우리도 다람이 보살펴주고 받은 거니까 이거 땅에 심자!”
누나로 사는 건 고되다. 평소라면 장단을 안 맞춰 줬을 텐데 나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거 같아서 괜히 그 도토리를 빼앗아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동희는 신난 얼굴로 물을 뜨러 갔다. 나는 적당한 나무 자리를 살피는 척을 하던 중 그렇게 열심히 찾을 때는 없었던 별 모양이자 코끼리 똥 모양 돌멩이를 찾았다. 우리는 도토리를 그곳에 심기로 했다.
동희와 나는 그곳에 흙을 팠다. 큰 돌멩이를 걸러냈다. 그 자리에 도토리를 살포시 올려놨다. 다시 고운 흙으로 덮고 그 위에 모래를 덮고 동희가 떠온 물을 주었다. 그 위에 나뭇잎을 덮었다. 동희는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나도 눈을 감았다. 어떤 소원을 빌어야 했을까. 관악산과 백두산의 행복을 빌어야 했을까. 다람이의 행복을 빌어야 했을까. 동희는 금방 눈을 뜨고는 다시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서는 탁탁. 쟤는 이기적이다. 자기 할 거 끝나면 남이 뭘 하던 저렇게 방해를 한다.
나는 다시 눈을 꾹 감고는 다람이를 생각했다. 사랑을 찾은 엄마를 생각했다. 옷장을 바라보는 아빠를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동희처럼 중얼거려 소원을 빌었다. 눈을 떴다. 나무 사이로 눈이 마주쳤다. 분명 다람이였다. 다시 바람이 불었다. 빨간 낙엽비가 내렸다. 다람이는 사라졌다. 동희가 조용한 거 같아 뒤돌아 보니 하늘 끝이 주황색이었다. 배가 고파졌다.
집 앞에 도착하니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보라색으로 물들여 있었다. 아빠가 오기 전에는 집에 있고 싶어서 서둘렀다. 매일 지나가던 복도인데 집에 가까워질수록 심장은 콩. 무언가 평소와 온도가 달랐다. 문을 열자 좁은 현관에는 처음 보는 커다란 신발이 있었다.
“희영이랑 동희 많이 컸구나. 역시 애들은 빨리 큰다니까. 고모랑 나 기억하지? 우리 작년 설날에 봤잖아.”
기억 못 할 뻔했지만 눈썹 위 왕점을 보니 고모부였다. 고모부는 작년 설보다 많이 웃으며 우리를 반겼다. 고모는 울고 있었다. 꼭 나를 노려보며 울고 있는 거 같았다. 고모부는 그렇게 심각한 일 아니라며 고모를 화장실로 보냈다. 고모부는 우리에게 줄 아이스크림을 가져왔다며 입꼬리만 웃은 채 꺼내주었다. 고모부는 내가 아이스크림을 한 입 물자 맛있냐고 물어보더니 아빠는 당분간 볼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어떤 맥락인지 모르겠다. 내가 못 알아들을 줄 알고 하는 주의 없는 둘의 속닥거림을 들어보니 아빠는 병원에 있다. 동희는 속도 없이 아이스크림에 붙은 땅콩을 골라내고 있었다.
시계 소리가 크게 들렸다. 천천히 똑딱. 똑. 목구멍이 뜨거웠다. 내 손에 쥔 아이스크림은 자꾸만 톡. 그러다 현관 도어락 소리가 미끄럽게 들렸다. 문이 열렸다. 동희는 땅콩을 이제 막 다 골라낸 아이스크림을 팽개치고 현관으로 달려간다. 엄마다.
나는. 콩, 뚝.
똑, 탁, 쿵.
딱, 똑, 쿵, 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