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이태원 참사 합동 분향소 지킴이에 지원해서 오늘 다녀왔다. 오전에만 잠시 자리를 지켰으므로 그리 오랜 시간 있었던 건 아니다. 오늘은 이태원 참사 발생 213일째다.
오늘은 한산했다. 연휴라서인지 평소보다 추모객이 적은 듯하다고, 먼저 와 계셨던 상주 지킴이 분께 들었다.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몰라 서명을 받는 일을 잠시 했다. 워낙 방문자가 드문드문 이어져서 할 일이 딱히 없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시간이 가면, 분향소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리고 진상규명은 이루어질 수 있는 걸
까. 책임자 처벌은 가능한 걸까. 가만히 대기하는 시간이 긴 와중 들었던 생각이다. 그러던 중 재외국민 두 분이 각각 따로 방문하셨다. 추모객이 와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두 분 모두 후원금을 현금으로 전하고 가고 싶다고 문의하셨다. 후원과 관련해 상주 지킴이 분께서 잘 안내하시는 걸 지켜보았다.
서명받는 자리에 앉아 있다가, 또 다른 지킴이 자원자분들이 오셨다. 나는 자리를 옮겨 분향소 영정 사진 앞에서 흰 국화를 들고 대기하기 시작했다. 광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좁다고 볼 순 없지만, 그리 넓진 않은 광장. 그 곳곳에 경찰들이 서 있었고, 영정 사진의 바로 정면 방향에도 경찰이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아마 그는 나를 비롯해 그곳을 오간 지킴이들과 추모객들을 지켜보았겠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대부분의 시간 동안 지킴이들도, 경찰도, 그리고 분향소에 모셔진 영정 사진들도 모두 고요했다. 추모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띄엄띄엄 주로 외국인 조문객이 서울 여행 중 들러 조문했고 작년 핼러윈의 참사에 대해 일행들끼리 대화하며 천천히 사라졌다. 먼 곳에서는 아이가 있는 단란한 한 가족이 푸른 잔디밭을 지나며 나들이를 즐기다가 먼발치서 분향소를 한참씩 바라보곤 사라졌다. 그렇게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오전이 한낮을 향해 가면서 시청역 부근엔 유동 인구가 많아졌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159명의 영정 사진(비어 있는 액자를 포함하여) 속 얼굴들이 혹 바로 그 자리에서 광장을 바라보고 있었다면, 눈을 뜨고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면,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을 나와 똑같이 공유하고 있었을까?
며칠 전 읽은, 희생자 김 단이 님의 이야기를 다룬 기사가 생각났다. 그분이 생전에 기록해 둔 적 있는, 노트 속 버킷리스트를 다루는 기사였다. 당차고 사랑스러운 소망이 많이 적혀있었고, 자신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가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읽히는 리스트였다. 나는 김 단이 님의 사진을 금방 찾았다. 누군가가 남긴 꿈의 리스트가 전해주는 생기, 그리고 그가 사회적 참사의 희생자라는 사실의 간극이 황망할 만큼 크게 느껴졌다.
띄엄띄엄 이어지는 추모의 순간과 그 전후의 고요한 시간을 보내면서, 한(恨)이 너무 많다고, 이 나라는 암만 살기 좋은 나라라고 좋은 점을 찾아내어 추앙한다고 해도, 서려 있는 한이 참 많은 나라라고 생각했다. 길에서 사람이 죽는 나라가 좋은 나라일 수 있는지.
국화를 들고 내내 서 있으면서 영정 사진 액자 구석구석에 부착된, 유가족과 지인들의 마음이 적힌 작은 메모들을 보았다. 때때로 정리하는 모양인지 현재 메모가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 후회와 사랑, 황망함, 그리움이 깃들어 있었다. 일상에 위로가 있기를. 어떤 위로도 쉽게 가닿기 어려울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다. 분향소가 있는 광장에서의 시간을 영정 사진과 함께 보냈다는 것에, 추모의 마음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먹먹했다.
진상규명이 되기를. 책임자 처벌이 되기를. 평화와 비폭력, 그리고 모든 생명의 안전이 보장되는 나라가 되기를.
나의 시간은 자주 멈추어 있다. 2022년 10월 29일에 멈추어 있고, 또 참사 발생 213일째인 오늘에 멈추어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동시에 흐를 것이다. 기억을 안고. 건강하게 웃으면서 지내기도 할 것이다. 이 모든 시간 속에서 서로를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이곳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이 마음을 지킬 것이다. 끝까지 나를 기억해주고 내가 기억하려 하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또 영정사진 속 얼굴들에게 이 마음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