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힐 공동체
힘이 필요할 때마다
사랑이 필요할 때마다
꺼내먹는 기억들이 있어요.
저한텐 캠프힐 공동체(Camphill Community)에서 지냈던 1년이 그중 하나입니다.
벌써 다녀온 지 5년이 다 되어가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가는 것이 걱정되어요. 아직 그곳의 냄새와 말들이 생생할 때 기록을 더 많이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점점 더 꺼내 먹는 기억이 많이 필요로 할 테니까요. 또 매일같이 다양한 모양의 사랑을 경험했던 그 시간들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캠프힐 공동체는 발달장애가 있는 성인들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모여 살아가는 곳이고 미국 필라델피아 인근에 위치해 있어요. 11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데요. 누가 어떤 장애를 갖고 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그 사람의 이름과 식단 정보(알러지, 채식 단계 등)를 잘 알고 있는 것이 훨씬 중요한 공동체입니다.
늘 식탁에 1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함께 밥 먹는 구성원들이 조금씩 달라지는데요. 식사 준비팀은 그 날의 식사 멤버 중 땅콩 알러지 있는 사람, 우유를 마시지 못하는 사람, 딱딱한 걸 씹지 못하는 사람,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 밀가루를 안 먹는 사람 등이 있는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구성원들의 특성을 고려하여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평등한 밥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지요. 밀가루를 먹지 않는 사람에게만 밥을 준 뒤 나머지는 모두 다 파스타를 먹는 방식보단 다 같이 밥을 먹는 방법 등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10명에게 모두 평등한 밥상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힘과 정성이 드는 일이지만 이것이 공동체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에 서투르더라도, 완벽하지 않더라도 여러 대안을 만들어냅니다.
밥 다음으로 중요한 건 일입니다. 캠프힐에는 정말 다양한 워크샵(작업)이 존재하는데요. 캠프힐 환경을 조성하고 관리하는 Estate업무(잔디 깎기, 장작 패기 등)부터 베이커리, 카페, 농장, 목장, 공방 등이 있습니다. 모두가 공동의 목표를 달성해내기 위해 각 개인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가 어떤 환경에서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지, 특별히 잘하고 좋아하는 것, 싫어하고 어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동료들이 기억해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되지요.
반복적인 업무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포장, 허브 다듬기 등의 업무가 주어지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상품 배달, 손님 응대 등의 업무가 또 내향적인 사람에겐 뜨개질, 도예 등 혼자서 상품을 만들어내는 일을 맡게 됩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회의’를 통해 결정합니다.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인 만큼 매일매일 다양한 이벤트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일을 하다가 누군가 사라지는 일 같은 거요.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J는 달력과 비디오를 너무나 좋아해요. 일을 하다 갑자기 좋아하는 것들이 생각이 나면 그는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그것들을 찾으러 떠납니다. 농장에서 감자를 잘 줍다가 정말 갑자기 벌떡 일어나 어디론가 빠르게 뛰어가는데요. 괜찮습니다.
J는 공동체 내 10개 하우스 중 한 곳에서 달력과 비디오를 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에요. J가 다 보고 올 때까지 기다려도 되고,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면 각 집에 전화를 돌려 J가 있는 곳을 찾거나 아니면 J를 발견한 누군가가 J를 일터로 데려와줄 수 있지요.
내가 갑자기 일하다 사라져도, 밥을 먹다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나서 소리를 질러도, 한 가지의 행동을 하기 위해 30번의 연습이 필요해도 다 괜찮은 곳. 나의 어려움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내가 나로서 존중되는 공동체를 (항상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끊임없이 만들어 나갑니다.
장애에 대해 더 배우고 싶어 이곳을 찾았지만 이 공동체는‘장애’라고 하는 렌즈를 끼고 바라보기엔 너무나 거대한 세계라는 생각이 계속 들게했어요. 빌리저 중 한 분은 자신을 다람쥐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데요. 그를 인간처럼 대하면 어떤 말에도 대답하지 않고 다람쥐처럼 대해야 소통을 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그와 함께 요리하고 일하고 소통하기 위해 다람쥐를 열심히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람쥐를 잘 알아야 했기 때문이에요.
나와 다른 당신이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그간 쌓아왔던 많은 고정된 생각들을 수없이 깨뜨리고 깨지는 과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캠프힐에서 생활한 지 딱 6개월이 되었을 때 빌리져들과 함께 동물원에 다녀온 후 썼던 일기 한 편을 여러분과 공유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