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른쪽 어금니가 이상하리만큼 허전해진 걸 알아차렸습니다. 열아홉 살, 어금니가 한 개도 아닌 왼쪽, 오른쪽, 위, 아래 모두가 까맣게 썩어 있다는 말에 눈물을 머금고 금 조각을 하나씩 채워줬던 때가 있었어요. 그중 하나, 오른쪽 어금니를 채워주고 있던 그 금 조각이 언제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건지 빈자리만 남겨두었더라고요. 정말 금 조각이 빠져버린 게 맞는지, 치과를 다시 가야만 하는 건지 혀로 재차 어금니의 상태를 확인해 봤지만 휑하니 뚫린 구멍만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내심 겁이 나기 시작했어요. 충치 치료를 받은 지 꽤나 시간이 흘렀었거든요.
한번은 가야 할 것 같았어요. 어느 날부터 치아가 다 빠져버리는 꿈을 꾸고는 했기 때문이에요. 잇몸에 기대 자리를 잡고 있던 이들이 스프링 튕겨 나가듯 빠져버리는 꿈이었어요. 하루는 손바닥으로 빠져버린 이를 부여잡고 있기도 했고, 하루는 세면대에 뒹굴고 있는 이를 울며 바라보다 잠에서 깨어나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무슨 의미일까 해몽을 찾아보기도 했는데 점점 잦아지는 꿈에 이가 아픈 건 아닌지 걱정이 되더라고요.
문제는 치과 의자에 누워 입을 벌린 순간부터, 아니 치아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 기계를 붙잡은 순간부터 찾아왔습니다. 어금니의 금 조각이 사라진 건 자리를 다시 메우면 되는 일이었어요. 물론 많이 아프겠지만요.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예전에 치아 교정을 한 후, 계속해서 치아의 뿌리가 짧아지고 있었다는 거였어요. 치아 안쪽에 있는 유지 장치가 없다면 저의 이들은 언제든 후드득 빠져버릴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듣고 말았습니다. 유지장치는 그대로였지만 당장이라도 이가 빠져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어요. 꿈을 꾸었을 때처럼요.
치과 의자에 누워 초록 천으로 눈을 가리고 나니 그곳에 혼자 덩그러니 누워있다는 서러움이 온몸을 무겁게 짓눌렀어요. 차가운 기계가 요란한 소리로 이에 닿을 때는 찌릿한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 느끼려 온 힘 다해 떨리는 몸을 부여잡았습니다. 손에 맺히던 식은땀이 발가락 사이까지 번져 나가는 것 같았어요. 다시 한번 힘을 주려 길게 숨을 들이마시려는 때에 따듯한 온기가 손에 닿음을 느꼈어요. 그리고 그 온기에 잊고 있던 기억들이 피어올랐습니다.
스물셋, 자전거로 우도 한 바퀴를 돌다 바다에 눈을 뺏겨 넘어져 버린 날, 무릎에 맞은 주사가 아파 진료실 문을 나서자마자 안겼던 아빠의 품.
스물하나, 치아 교정을 위해 작은 어금니를 두 개나 뺀 날, 타이레놀을 사 들고 치과 대기실에 앉아 있던 아빠의 모습.
그보다 훨씬 어렸던 어느 날, 울지 않고 주사를 맞을 때면 씩씩하다고 웃으며 안아주는 아빠가 좋아 바늘 따위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소리치며 주사실을 걸어 나오던 어릴 적 내 모습.
서른 살의 저는 여전히 치과가 무서웠습니다. 더 이상 치과 문을 나서 그 품에 안길 순 없겠지만 지나온 기억에서 사랑을 읽을 수 있음에 감사했어요. 그렇지만 계단을 내려오며 잠시 투정을 부리긴 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아플 때마다 더 어리광 부릴 걸-하고 말이에요. 서른은 정말 서투른 어른이 맞나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