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부탁받은 지가 꼬박 보름이 되어갈 때쯤, 우연히 집어 든 책 첫번째 장에 적힌 누군가의 그리움 덕분에 이 글을 적을 수 있었습니다. 몇 해 전에는 잠시라도 쓰지/읽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어설픈 열정에 빠져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남의 추억인 양 누래진 종이에 반색하면서도 지문을 더하는 일이 도통 없습니다. 언제였나 하는 가물가물한 기억에 계절을 상기시키는 인사말이 적힌 편지가 떠올라 꺼내어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내 이야기겠지만, 누군가 읽게 된다니 낯설고 두려운 마음입니다.
저는 오늘 아침 6시 20분에 눈을 뜨고 38분에 몸을 일으켰습니다. 알람은 매일 6시30분에 맞춰져 있지만 한 번도 30분에 눈을 뜬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규칙적으로 착실하게 일어나는 스스로를 기특하게 여기며 이런 내가 자영업을 하는게 더 이득일까 회사원을 하는 게 더 이득일까 하는 망상을 하며 씻었습니다. 자영업을 한다면 어느 날씨 좋은 날에는 가게 문 앞 “날씨가 너무 좋아 하루 쉽니다” 하고 “죄송합니다”가 아니라 “감사합니다”를 덧붙여야지…… 라는 각오도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하루를 쉬면 10~20만원이 손해라는, 자영업자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라 정신을 차렸습니다.
아침식사로는 깻잎 장아찌와 계란 후라이 그리고 어제 먹다 남은 냉동 떡갈비를 먹었습니다.
출근길은 언제나 사람이 많아 지옥철이고 어떨 땐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까치발을 들기까지 해야 하는데 출근이 이렇게 힘들 거라면 차라리 출근도 운동이라 여겨줬으면 하는 작은 소망도 있습니다.
일은 재미없습니다. 아니, 사람이 일을 재미없게 만듭니다.
점심시간에는 혼자 있고 싶지만…… 사실, 그보다는 누워 있고 싶습니다.
일은 재미없습니다. 아니, 대표님이 일을 재미없게 만듭니다.
퇴근을 하면 붐비는 지하철을 피하기 위해 30분간 산책을 하고 열차에 오릅니다. 아직 여름이 오지 않아 이 시간대 바깥이 저를 가장 행복하게 만듭니다. (물론, 퇴근해서 이겠지만……)
오늘 퇴근길에는 유모차와 어린이용 킥보드, 캐리어를 양손 가득 든 젊은 부모를 보았습니다. 붐비는 인파를 헤치고 내리는 두 부부의 얼굴에는 독기 어린 생활력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처음 든 생각은 돈이 없으면 참 어려운 세상이구나, 다음 든 생각은 돈이 없으면 멀리 나가 놀지 말지, 그다음 든 생각은 나도 능력이 없는데 그런 생각 말자, 나는 능력이 없으니 부모는 되지 말자
퇴근을 한 몸뚱어리는 더 보잘것없어집니다. 고단함에 허겁지겁 먹은 식사에 튀어나온 뱃살과 축 쳐져 버린 온갖 피부와 주름들. 하루가 24시간이라는데…… 8시간은 자고 12시간이상 일하는데 쓰면 4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라도 남아야 하는데…… 왜 먹고 씻고 누우면 하루가 끝나있는걸까요? 10시 30분 무렵이 되면 알람보다 정확하게 감기는 눈꺼풀에 못이기는 척 잠에 듭니다.
6년 전 이맘때, 저는 텅 빈 방 안에 홀로 앉아있었습니다. 그날에 저는 비슷하게 자고, 비슷하게 먹고,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저를 기억해 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날의 저는 존재했던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