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는 열이 39.3도까지 오른 아이를 품에 안고 젖은 손수건으로 등과 겨드랑이를 닦아줬다. 어제는 머리가 슬슬 뜨거워지고 배가 아프더니 오늘은 열이 38.3도인거지. 병원을 갔더니 의사선생님이 검사키트를 보여주며 독감이시네요. 했다. 그리고 내 목과 코의 상태에 대해 빠르게 설명을 해주더니 “비타민 C를 많이 드세요.”라고 말했다. 집 가는 길에 마트에 들려 두부와 팽이버섯을 카트에 담았다. 과일코너를 지나가려다가 오렌지를 본 것이다. 다시 지나가려다가 오렌지를 본 것이다. 봉지 오렌지와 낱개 오렌지였다. 오렌지 한 개만 사볼까 들었다가 겹쳐 보이는 저쪽 오렌지 가격표를 보고 봉지에게 걸음을 옮겼다.
8개의 오렌지를 가지게 되었다. 자발적으로 가져본 적 없는 것이었다.
첫 번째 오렌지 – 동그란 실패
와이파이가 때마침 고장 나 기타를 치는 시간이 늘어났다. 코드를 수집하고는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머니에 넣어놓았다. 주머니에 넣어놓느라 제대로 꺼내진 못했다. 주섬주섬 찾는 시간이 더 걸렸지만 그래도 노래를 부르고 만다. 자우림의 ‘우리들의 실패’에서 좋아하는 가사는 ‘우리들이 믿었던 무지개같은 속삭임’이다. 내려놓지 못했던 그대여 우리에게 남은 건, 그 다음 가사. 실패는 결과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과정을 나타내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동그랗다는 뜻이다. 영원한 건 없듯이 성공한들 실패가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그걸 알더라도 결국 없어질 무지개들이 다시 생겨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실패하지 않는 사랑이 있냐하면 그와 함께 썩은 무지개를 쥐고 잔여된 색깔을 하나씩 세어볼 것이다.
두 번째 오렌지 - 빛 구름 빛
곧 입하인데 전기장판은 아직 침대 위에 있다. 캐리어를 꺼낸다. 다시 침대에 눕는다. 침대 밑의 박스 수납함을 꺼낸다. 다시 침대에 눕는다. 일련의 행동이 연쇄적으로 이어지기까지는 꽤 많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얼마 전에 선물 받은 노래들을 모아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다. 이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고 널브러진 옷들을 바라본다. 박지윤의 ‘봄, 여름 그 사이’가 나온다. 계절감을 되찾기 위해 털 달린 것들은 캐리어 안에 넣고 여름옷은 바깥으로 꺼냈다. 코로나 때 생활과는 다르고 싶었다. 비좁은 방에 쌓인 갖은 옷들과 박스들, 먹을 것들과 먼지 그리고 머리카락이 파도처럼 출렁거려서 침대 위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건강해지려고 노력을 했다. 불안이나 분노, 죄책감, 무기력 같은 것들을 소거하지 않고 인정하려고 노력한 시간들이었다. 몇 개월이 지난 지금은 청소기도 있고, 오렌지도 있다. 옷 정리와 바닥정리를 말끔히 끝내고는 침대에 엎드려 다음 날의 계획을 짜며 껍질을 깠다. 내일은 오렌지 세 개 먹어야지.
세 번째 오렌지 - 잘 지내보이겠지
아침에 일어났는데 머리가 아프고 열이 났다. 8000원짜리 체온계는 겨드랑이, 직장(항문), 혀 밑을 잴 수 있었는데 겨드랑이로 했다가 원하는 온도가 안 나와서 (이렇게 아픈데 모름지기 37도는 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으로) 체온계를 씻고 혀 밑에 넣었다. 설명서에는 ‘입은 다물고 코로 숨을 쉰 상태로 측정합니다.’라고 적혀있었다. 체온계를 물고는 한참을 기다렸다. 원하는 만큼은 아니어도 꽤 열이 올라 있었다. 약을 먹기 위해 어제 남겨놓은 죽을 끓였다. 아침부터 부지런해진 기분이 어떠세요. 어지러운데 기분은 좋네요. 깍두기를 퍼다가 죽과 함께 먹었다. 뮤지컬처럼 이 상황에서 반주가 흘러나오고 김사월의 ’오렌지‘가 재생된다. 궁금한 사람은 연락도 없고 말이야. 아프니까 걱정이 고프다. 노랫말처럼 사랑하는 건 너무 쉬운데 사랑받는 건 애탄다. 약 먹고 오렌지 먹고 푹 자니까 머리 아픈 게 사라졌다.
네 번째 오렌지 - 애기 오렌지
피식대학을 보며 낄낄대면서 먹었다. 동그란 오렌지 반으로 가르니 오렌지 속의 애기 오렌지. 우리 애들이 봤으면 분명 “연두! 애기 오렌지!” 하며 좋아했을 것이다. 애기 오렌지 뜯어다가 호록 먹고 어른 오렌지에 남겨진 애기 오렌지의 흔적까지도 호록 먹었다.
다섯 번째 오렌지 - 웃음
달에 한 번 쓰는 글쓰기 모임에서 웃음에 대해 글을 쓰기로 해놓고서는 내 맘대로 주제를 바꿨다. 원래는 웃음이라는 단어로 연상된 유머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다. 유머는 자존감이랑 연결이 돼서 아이들에게 안 웃기다는 말을 하면 큰일이 난다. 도토가 물을 갑자기 뱉고는 “나 웃기지.”라고 물어봐서 안 웃기다고 했더니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우앵 울어버리는거다. 놀란 어른들과 아이들이 도란방으로 와서 해명하느라 혼났다. 어린이집은 “연두가 도토 울렸다!” 라고 소문이 났다. 이런 이야기를 쓰려고 했었다.
글쓰기에 부담이 느껴진다. 문장을 계속해서 다듬다가 아잇 몰라 하고 전송 버튼을 눌러버렸다. 다들 어떻게 글을 그리 잘 쓰는지 도착한 글을 읽고는 아 웃음으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지, 웃음이라는 주제가 재미없는 게 아니지, 재미없는 건 나였지 싶었던 거다. 내가 생각하는 잘 쓴 글은 술술 읽히는 글이다. 평소 쓰는 단어가 생경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그런 글이 좋다. 적절하게 배치해서 여기에도 놓을 수 있구나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글. 건축가라거나 인테리어업자라거나 건설노동자들이 그래서 존경스럽다. 이런 능력은 언어지능일까 공간지각력일까. 부러움만 쌓인다.
육칠팔 번째 오렌지 - 거베라
일종의 객기이다. 오렌지는 물론이고 포도도, 딸기도 사 본 적이 없었다. 담배를 피우는 이유와도 맞닿았다. 과일이 생기면 초파리가 생기기 전에 사람을 불러 모아 시간을 보냈다. 공백이 생기면 빽빽하게 채워 넣는 것이 일이었고, 썩을 틈도 없이 태어나지도 못했다. 애도가 부족했던 것일까 충분하게 - 하염없이 - 누워있는 것이 참 어렵다. 다섯 번째 오렌지까지 먹고는 나갈 때가 감각되었다. 꽤 성공적인 48시간이었던 것이다. 오렌지를 가지겠다는 다짐부터 성공이었다. 취소했던 약속을 주워 담고 햇볕을 쐬겠다며 옷을 챙겨입었다. 거베라가 활짝 피어있었고 산들바람 같은 축하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