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년 시절
Ver. 1
세월은 참 유수와 같다. 벌써 내가 육십이라니 마음은 늘 청춘인데 이것 저것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면 힘이 드니 욕심은 세월을 따라가지 못하네. 10대 20대는 시골에서 자라고 학교 다니고 20대 서울 올라와서 직장생활하면서 친구들은 하나둘 제 짝 찾아가지만 나는 제일 늦게 결혼을 했다. 친구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키도크고 약간의 서구적으로 윤수일(옛날가수) 닮았다. 첫눈에 내사람이다 느낌이 왔다.
Ver. 2
나는 3남 2녀 중 셋째, 맏딸로 태어났다. 오빠 2. 나, 남동생, 여동생.
옛날에는 다들 그랬지만 특히 우리집은 왜그리 돈이 없는지. 아버지는 농사를 지었지만 소득이 별로 없고 엄마는 푸마시(품앗이의 경상도 사투리)로 일을 다니셨다. 항상 우리 집은 돈이 쪼달렸다. 가끔 아버지는 소장사매매소개(소 중개인)를 해주시고 가끔 돈을 가져 오시기로 했지만 넉넉지 못했다.
남들이 보면 우리 집이 부자인 줄 안다. 초가집 시절 우리 집이 마을에서 제일 먼저 기와집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보기는 제일 번듯했다.
초중은 그런대로 잘 다녔다. 고등학교를 갈려니까 입학금이 없었다. 그때 시절은 중졸도 많았다. 친구들은 다 돈 벌로 나가고 나는 그래도 고등학교를 다니고 싶어서 울면서 쪼르고 쫄라 맨 마지막 날 겨우 입학금을 마련해서 갖다 내었다.
일단은 고등을 입학했다. 하고 나면 교복이니 책값하고 또 필요했다. 줄 때까지 울면서 졸라서 겨우 이웃집에서 빌려서 샀다. 왜 다른 집은 돈이 있는데 우리 집은 없는지 엄마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 부모님은 욕심이 없었다. 남의 집 일을 그냥 해주기도 하고 착하시기만 한 것 같다. 그때부터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으리 결심하게 되었다.
돈을 모으고 또 모으리 다짐하면서 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그때 당시는 말도 못했다. 뻔히 형편을 알기 때문에 내가 벌어서 대학가리라 생각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나이 육십에 캠퍼스 한 번 밟아보고 싶기도 하지만 이제는 마음만 청춘이지, 머리가 따라주지 않는다. 의지도 부족하다.) 사촌언니가 서울서 직장 다니고 있어서 그냥 소개로 쇼핑센터에 취업을 했다. 성격이 온순한 편이어서 친구들도 많이 따르는 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친구들이 그립다. 참 재미있는 20대였는데 친구 관리가 잘 안 되는 편이라 그때 친구들 연락을 모른다. 한 번 보고 싶다. 그러다 친구 소개로 지금의 체체(아빠가 쳇해서 별명이 체체라고 한다)를 만나게 되었다. 키도 크고 이국적으로 생겨서 맘에 들었다. 보고 가는 날 저녁에 종소리가 들렸다. 인연은 종소리 난다던데 그 느낌을 받았다. 내가 먼저 바로 전화했다. 화끈하게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 얘기 하라 했다. 좋다 해서 결혼까지 가게 되었다.
살면서 토닥토닥 싸우지만 밉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해심은 조금 있고 겁이 없는 것처럼 하지만 속겁이 많다. 이제 어쩌겠나. 그냥 살아가는 거지. 이쁜 공주들이 있기에 난 괜찮지만 체체는 아들이 없어 서운할 것 같다. 그러나 더 좋은 딸들이 아들들(사위) 데려 오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