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택시
세일러복을 입고 다니던 어린 시절에는 폭주족 혹은 폭주족 애인을 꿈꾸곤 했지만, 꽤나 평이하고 성실한 삶을 살고 있는 저로서는, 오토바이 뒷자석에 타는 것은 익숙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처음 오토택시를 탔을 때에는 기사님의 허리를 잡아야 할지 어깨를 잡아야 할지 조차 몰랐었죠. (뒷자석에 손잡이가 있습니다.)
그래도 다섯 번째 탔을 때에는 꽤나 익숙해졌습니다, 쌩쌩 달리다 잠시 서행 할 때에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고, 쌩쌩 달릴 때 음악을 바꿔 들을 정도는 익숙해졌습니다. 그렇게 편안하게 오토바이를 타고 목적지를 향하다 알게 된 것인데, 그럼에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저의 상상이었습니다. 상상할 수 있는 사고의 가능성, 더 멀리 가면 죽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그런데 그것보다 더 생경하게 느껴지는 건 오히려 피부로 느껴지는 삶이었고요. 피부와 머리카락으로 느껴지는 바람과 눈으로 느껴지는 흙먼지라고 이야기하면 더 잘 와닿으실까요.
충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전 당신이 이 ‘익숙하지 않은 것보다 더 생경한 것’을 좀 더 가깝게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예시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이건 제가 오토택시를 타며 했던 생각의 일부인데요, 한번 떠올려보세요.
당신은 오랜만에 할머니댁에 갔습니다. 할머니댁의 베이지색 인조가죽 소파에는 와플 패턴의 오트밀색 요가 깔려있습니다. 당신은 그 푹신한 소파에 누워, 베란다를 확장 시킨 마루의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느끼듯 느끼지 않는 듯 TV를 보고 있습니다. 그때 그 앞의 소나무 좌탁에 어머니와 할머니께서 앉아 노인정 친구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대략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갑니다.
1. 희숙엄마네 막내딸의 첫째 딸이 글쎄
A. 태국에서 오토바이를 타다 죽었대.
가. 마주 오던 차에 치었대.
a) 신호위반을 해서
b) 거기가 원래 좀 그런 나라라서
c) 대마를 해서
d) 음주운전을 해서
e) 커브를 돌다가
나. 헬멧을 안 쓰고 있었대.
a) 기사가 안 줘서
(1) 말을 해야 주는 거라
(2) 원래 여분 헬멧을 들고 다니는 기사 자체가 많이 없어서
(3) 아차 깜빡해서
b) 버클을 안 잠가서
(1) 잠그는 방법을 모르는데 잠가 달라고 하기 민망해서
(2) 잠긴 줄 알아서
(3) 턱에 커다란 뾰루지가 나서
(4) 답답해서
c) 그날따라 머리가 맘에 들어서
다. 오토바이에서 튕겨 나갔대
a) 손잡이를 제대로 안 잡아서
(1) 만세를 하느라
(2) 에어기타를 치느라
(3)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이 본국으로 떠나기 전 만날 약속을 잡느라
(4) 마 무엉을 먹느라
(5) 손에서 땀이 나서
b) 돌부리에 걸려서
c) 고양이를 치어서
(1) 샴고양이
(2) 삼색 얼룩고양이
(3) 검은 고양이
(4) 엉덩이에 검은 조약돌모양 점이 있는 흰 고양이
라. 옆에 있던 강에 빠졌대
a) 그 짧은 새 기사와 사랑에 빠져서
b) 멀쩡하던 다리 위에 갑자기 구멍이 뻥 뚫려버려서
c) 강에 비친 도로가 지름길인 줄 알고 가려다가
d) 여행지의 기분에 취해 순간적으로 물리법칙을 잊어서
e) 거기 지나가던 사람들이 원래 자주들 빠지는 옛 묫자리여서
f) 왠지는 모르겠지만
마. 왠지는 나도 모르겠네
바. 갑자기 산사태가 났다나.
이 다양한 경우의 수 중 하나를 들은 당신은 여전히 TV를 보고 있습니다. TV에서는 스트리트 푸드파이터가 재방송되고 있지요. 사실 어떤 프로그램이든 상관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를 들으며 TV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지요. 그리고 당신은 생각합니다. 그 호사스럽고 딱한 죽음에 대해서요. 나도 여행지에서 죽으면 어떨까, 어떻게 될까, 여행자 보험을 안 들었으면 병원비는 어떻게 되는 걸까, 누가 날 데리러 오지? 시체는 어떻게 옮기지? 등등의 생각을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할머니의 노인정 친구분의 막내딸의 그 첫째 딸의
머리카락이 어떻게 바람에 날리고 있었는지
바람에 찡그린 눈이 어떻게 주름졌었는지
오후의 햇빛을 받은 눈가 주름 사이사이가 어떻게 그늘졌었는지
부여잡은 기사의 어깨가 어떻게 단단하고 물렁했는지
코와 입이 흙먼지와 매연으로 얼마나 텁텁했는지
허벅지 사이로 꽉 잡은 오토바이의 달궈진 몸체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듣고 있던 음악의 리듬이 그를 얼마나 들뜨게 했는지
옆 차의 창에 비친 얼굴이 얼마나 기름졌는지
등이 햇빛에 어떻게 구워지고 있었는지
입에 물고 있던 피셔맨즈 민트가 얼마나 차가웠는지
강에서 불어오던 바람이 얼마나 비릿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