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해진 삶과 운명 같은 것이야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따금 언젠가 생각했을 법한 장면을 지나간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땐 미처 알지 못한 일들을 다시 확인하는 그런 날이 있다.
/ 내 방에는 책이 가득했었다. 누가 선정했는지 이유조차 모를 이 시대의 위인전부터 여전히 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제목 정도는 알고 있는 세계 전집, 갖가지 동화책과 만화책이. 그렇게 남이 준 책부터 용돈으로 하나둘 모으기 시작한 영화 주간지와 학교에서 가져왔던 더 이상 볼 일 없는 교과서와 낙서가 가득한 무제 노트가.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사사로운 아지트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 키가 커져 이제는 맞지 않는 옷장 속 옷을 정리해야 하는 것처럼, 더 이상 찾지 않을 책은 언젠가 정리해야 한다. 서랍과 책장은 커다란 고래의 배 속이나 도라에몽 주머니같이 무한히 커지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마음만큼은 가져오는 책들을 모두 고이 접어 보관하고 싶지만, 거실에서 엄마가 하루빨리 책장을 정리하라고 한다. 원래 내 마음과 엄마의 바람은 절대 같을 수가 없는 법이다. 물론, 많은 경우에 이런 종류의 일들은 엄마의 말을 듣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발이 달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리모컨과 지갑의 위치를 엄마는 항상 귀신같이 알고 있었다.
/ 책을 버리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버릴 책을 정하는 것도 커다란 문제다. 동전 던지기로 결정하기엔 각각의 경우가 너무 많다. 당장 저녁 먹을거리 정하는 것도 골치 아파 죽겠는데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괜히 내일 먹을 점심을 전날 밤부터 고민하는 게 아니다. 누군가 선택지를 골라준다면 참 맘 편할 일이겠지만, 막상 그러면 어디선가 청개구리 같은 마음이 피어나니. 괜한 불평과 불만보다는 고민과 후회가 낫지 않나 한다. 보다 건강한 것 같다. 선택지가 많든 적든 무언가를 정하고 고르는 것은 참 고역이다.
/ 애정의 크기를 비교해야 했다. 모든 책에 같은 크기의 마음을 가지고 있을 순 없다. 무언가 동등한 크기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건 거기에 관해 아무런 관심과 생각이 없다는 방증일 테다. 다행히, 그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처럼 책을 미워하는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미워하는 사람도 없다시피 하지만 반갑지도 내키지도 않는 사람이 있다는 걸 부정할 순 없다. 그만큼 마음 가는 사람도 있다. 마찬가지로,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새우깡처럼 유달리 손이 자주 가는 책이 있다.
/ 그렇게 끝끝내 버리지 못한 책이 두 가지였는데, 첫째는 교과서와 노트다. 한 학기가 끝날 무렵, 해당 학기에 사용했던 교과서를 친구들과 함께 분리수거장에 버리는 모습은 으레 관습적인 것이었고, 이는 다가오는 방학식을 알리는 가장 극적인 행사였다. 다 같이 분리수거장으로 향하는 행렬에 나 역시 동참했는데,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수 많은 교과서와 노트를 가방에 한가득 챙겨 집에 가져오곤 했다. 교과서는 그 크기가 제각기 달라서 책장에 들어가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다. 보통은 이 무더기들을 박스에 넣어 책상 아래 보관했는데, 청소하시는 엄마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 그 무거운 책들을 가져왔던 것은 그 속에 담겨 있던 낙서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낙서가 없는 공책과 교과서까지 굳이 챙겨오지는 않았다. 낙서가 담긴 책은 그만큼 손이 자주 가던 책이었으니, 갖가지 낙서와 그림은 책을 펼친 날의 가장 사적이며 분명한 기록이자 흔적일 테다. 낙서를 가볍게 썼다 지웠다 하지만, 그렇기에 가장 쉽게 버릴 수 없는 것이 낙서일지 모른다. 졸업 앨범과 비슷한 게 아닐까 한다.
/ 제대로 멋대로인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 종이에나 낙서하지 않을 것이다. 시험 답안지에 낙서를 휘갈기기에는 전날 공부 안 한 티가 너무 많이 나니 말이다. 낙서하는 종이는 특정한 필요성과 목적의식이 약화한 종이일 테다. 낙서를 가장 많이 했던 공책도 학교 정문 앞에서 나눠주는 대형미술학원의 무제 공책이었다. 공책의 반절이 광고로 도배된 공책이었는데, 나는 그 공책을 오목 공책이라고 불렀다. 오목을 수업 시간이 아닌 쉬는 시간에 하는 사람은 재밌게 산 사람은 아닐 테다. 관계에는 가벼운 거리감이 있어야 한다. 실없는 공책이었고 그렇기에 소중했을 공책이었다. 두 번째는 다.
/ <보물찾기 시리즈>를 아시는가. <내일은 실험왕>과 불멸의 걸작 <살아남기 시리즈>를 만든 아이세움 출판사에서 만든 세계 곳곳의 보물찾기를 주제로 한 학습 만화다. 누군가를 <세계테마기행>을 보면서 느꼈을 다른 공간에 대한 설렘을, 더 넓은 세계로의 욕망을 나는 <보물찾기 시리즈>를 보면서 느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기억나는 건 배경 나라의 인사말로 적혀져 있는 1장의 소제목과 ‘지팡이’, ‘도토리’, ‘지구본 박사’ 같은 몇몇 주인공의 이름뿐이지만 말이다.
/ 초등학교 다닐 때는 참 다양한 학습만화가 있었다. 친구들의 집에는 <WHY? 시리즈>와 언제 다음 권이 나올지 기약이 없는 <마법천자문>이 하나씩은 꽂혀 있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있던 집에는 가 꼭 <먼 나라 이웃나라>가 같이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도서관이든 초등학생이 많이 다니는 도서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책은 아무리 봐도 ‘WHY, 사춘기와 성’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책 표지가 제대로 붙어있던 책을 본 기억이 없다.
/ 주기적으로 출판되었던 <보물찾기 시리즈>를 모았던 것처럼, 격월로 발간되던 <수학도둑>, <코믹 메이플스토리> 같은 만화책을 모으던 친구들이 있었다. 책을 새로 산 날이면 구매 특권으로 먼저 한 번 책을 읽고, 학교에 가져가 친구들과 돌려보곤 했다. 보통은 일요일 날, 교회 갔다 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책 한두 권을 사 오곤 했다. 사고 싶던 것을 사 오던 기억 덕분인지 서점에 가서 책을 구경하는 일이, 어디선가 책을 사 오는 일이 나에겐 아직까지는 즐거움으로 남아있다. 몇 안 남아있는 수고스러움의 즐거움이다.
/ 세계사를 배운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교회에도 열심히 출석하고 성실함을 누군가에게 증명이라도 하듯 방송반에서 봉사하기도 했다. 신실한 믿음보다는 주변인들의 관계 때문에 교회에 갔던 것 같다. 방송실에서 하는 일이야 깜깜한 방 속에서 예배 순서에 맞게 PPT를 넘기는 것이 전부였지만, 함께 예배를 드렸다는 심리적 만족감과 더불어 엄숙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남들이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공간에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눈치껏 PPT를 넘기며 공부한다는 명목으로 가져온 세계사 교재를 보고 또 봤다. 어떤 이름들에 마음이 끌렸던 건지. 꼴에 교과서라고 마음의 짐이 덜 했나 보다.
/ 역사 과목은 배우는 재미가 있었다. 유달리 본문 줄글을 읽는 재미가 있던 과목이다. 지금은 언론 매체와 유튜브 가릴 것 없이 역사를 주제로 한 콘텐츠가 너무나 많지만, “청소년의 심각한 역사 인식” 문제가 저녁 뉴스의 메인 헤드라인으로 올라왔던 것이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역사 주제와 그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이 중요하게 다뤄진 것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열심히 학교에 다니면서 야자를 했을 때였다.
/ 개성에 가보고 싶었다. 정몽주가 이방원이 보낸 첩자에 의해 철퇴를 맞고 죽었다는 선죽교에 가보고 싶었다. 조선의 건국을 위해 정몽주를 회유하고자 했던 이방원의 ‘하여가’, 고려에 대한 충심을 굳게 알린 정몽주의 ‘단심가’. 전후 사정은 잘 모르더라도, “이런들 어떠하리, 이 몸이 죽고 죽어” 하는 두 사람의 시조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가장 극적인 한국사의 순간이 아닐까 한다.
/ 누군가 “고향이 어디냐” 물을 때면 “파주”라고 답한다. 파주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군대에 가기까지 10년을 넘게 파주에서 지냈으니. 어린이집과 유치원 다닐 때의 기억이 남아 있다면 얼마나 남아 있을까. 기억 속 내 고향은 누가 뭐래도 파주일 테다.
/ 땅바닥에 떨어진 삐라를 주워 본 사람이 내 주위에 얼마나 있을까. 가끔 길을 지나다니다 땅에 떨어진 삐라를 주울 때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체제 선전 문구, 거기에 매서운 표정의 인민군 그림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삐라에 그려진 인민군들의 몰골은 그림임에도 왜소해 보여서 다행히 마음이 동하진 않았다. 학교에서 역사 수업을 잘 받아서 그런 것 같다.
/ 학원에서 수업을 듣다가 ‘두두두’ 소리가 들려 창문을 확인하면 어디선가 훈련했는지 이동하는 장갑차가 보였다. 학교 가는 강둑길을 따라 전투호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하교 시간이면 그 안에서 작전 중인 군인들이 있었고, 등교 시간 횡단보도의 신호를 기다리며 육공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향하는 군인들을 보았다. 훈련소에서 총과 군복을 받고 아마 등굣길에서 나는 스스로의 이런 모습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지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아무튼 이런 것이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 우리 가족의 주말농장은 군사 분계선 안에 위치했었다. 도대체가 엄마는 그런 곳은 어떻게 알았고 이용권은 또 어디서 구해오는 것인지 지금도 여전히 미스터리다. 정주영이 소 떼 몰고 가던 다리를 지나 주말농장으로 간다. 다리 중간, 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운전자가 신분증을 제출해야 한다. 사실 구체적인 과정은 기억나지 않는다. 친구들과 게임을 하는 시간에 부모님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초등학생에게는 충분하다. 출입증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주말농장에 건너가기 위해서는 어떤 검사를 통과해야만 했다.
/ ‘허준’의 묘가 어디 있는지 아시는가. 민통선 안에 있다.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간다고 하면 보통은 ‘파주삼릉’, ‘제3땅굴’, ‘판문점’, ‘하니랜드’가 전부다. 민통선으로 간다고 하시길래 땅굴이겠거니 싶었지만, 허준 묘에 가서 반가웠던 기억이 남아있다. 이날 임진강역에도 갔었는데, 친구와 함께 철로 쪽으로 다가가니 우리를 뒤따라오던 헌병의 모습을 기억한다.
/ 지난가을(22년의 가을), 순례길을 걸으며 만난 덴마크 사람이 있다. 일상적인 대화가 오고 가던 와중, 아저씨는 나에게 자신이 북한으로 여행을 가서 찍은 평양의 사진을 보여줬다. 평양의 이곳저곳을 걸어 다녔고, 차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돌아다녔다고 했다. 도로의 상태가 좋지 않아 고생했다고도 말했다. 개성에 가봤냐는 질문에는 가보지 않았다고 답했다. 국익에 부합하는 정말 특별한 사유가 아닌 이상 북한에 방문하는 일이 불법임을 의아해하던 아저씨다. 처음으로 목격한 두 발로 북한을 걸어 다녔던 사람이었다.
/ 순례 중 가장 감격스러운 순간은 단연코 포르투갈에서 스페인으로, 내 두 발로 국경을 넘어갈 때의 순간이었다. 포르투갈의 국경에 다다르며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에 꽤 근접했을 때, 이미 나는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순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할 것임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때는 산티아고의 다음 행선지도 얼추 정해진 상태라 도착지보단 경유지란 생각이 먼저 들었고, 도착보다는 돌아다니는 그 자체에 큰 의미를 갖기 시작한 상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발로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 비행기와 배의 도움 없이, 육로로 국경을 건너간다는 건 애당초 불필요한 생각이었다. 어떤 사고의 확장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생각조차 해본 적 없다. 그렇지만 걸어서 국경을 넘는 그 순간, 어느 분명한 체크포인트를 지나갔음을 느꼈다. 동시에 이 설렘을 평생에 지녀갈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잠깐의 낙서 같은 감정일 텐데 말이다. 그리고 오랜만에 <보물찾기 시리즈>를 읽으며, <로빈슨 크루소>를 읽으며, 교과서를 읽으며 개성에 가고 싶어 했던 그 어린 내가 바랬을 나의 모습을 막연하게나마 다시금 확인했다.
/ 10살, 12살, 14살의 마음을 확인했던 날,
어린 날의 마음을 확인했던 날.